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청소년문학판에 꾸준하게 텃밭을 가꿔온 사계절출판사의 ‘사계절1318문고’ 가 지난주 100권째 책을 출간했다. 1997년 4월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로 첫삽을 뜬지 18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시리즈 제목에 포함되는 나이 만 18살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성인으로 진입하기 위해 달려가는 막바지 단계다.
의미있는 숫자 100을 기념하기 위해 사계절문학상 수상작가 8명이 모였다. 사계절문학상은 청소년문학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2002년 제정한 상으로 이옥수, 신여랑, 김해원, 박지리, 이송현, 홍명진, 김선희, 최상희 등이 대상을 수상했다. 책을 기획한 출판사 편집부는 “최고의 단편집을 써내고 많은 독자들과 기쁨을 함께하자”는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지만 “계획은 수정되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밝고 희망찬 십대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해 미안하지만,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으려는 주인공들을 그려냈”다는 게 출판사쪽의 전언이다.
표제작인 박지리의 ‘세븐틴 세븐틴’(사진)은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아온 반장이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폭식증에 걸려 거구가 되어가는 주인공은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에서 자신처럼 망가진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애를 쓴다. 김해원의 ‘그 여름의 전설’은 수재 귀신이 나타난다는 낡은 아파트를 찾아가는 소년들의 모험을 그린다. 공부 잘하는 수재였는데 이 아파트에서 죽은 귀신을 만나면 좋은 대학에 간다는 괴담을 듣고 찾아간 아이들 중 하나는 그 귀신이야기의 아픈 진실을 홀로 간직하고 있는 아이다. 신여랑의 ‘현수의 집’에서 현수는 무능한 아버지 탓에 친척집을 전전하며 나이보다 훨씬 빨리 철이 든 아이다. 무책임하게 현수를 맡겼다가 무책임하게 다시 데려가려는 아버지를 거부하는 현수의 방 한칸은 이 세상에서 비좁기만 하다. 이처럼 등장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지고 걸어간다. 어른처럼 아직 단단하지 않은 체구로 휘청휘청 때로는 옆길로 새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의 등을 조용하게 따스하게 다독여주는 8개의 작품들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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