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의 발명
래리 샤이너 지음, 조주연 옮김
인간의기쁨·2만3000원 ‘예술’이라는 관념의 변천사라고나 할까. 미국 일리노이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래리 샤이너의 역작 <순수예술의 발명>은 순수예술이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복합체로서 출현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지은이는 ‘순수예술’이라는 관념에 대해 “계급과 성의 이해관계로 얼룩진 최근의 편협한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예술은 역사적으로 ‘발명’된 관념이라는 얘기다. 16~17세기에는 미술관 대신 ‘진기품 진열실’이 있었다. 고대부터 연극이나 연주회는 종교행사 또는 오락의 한 부분이었다. 전통적인 개념의 ‘예술’이 구분된 건 18세기에 이르러서다. 2000년 이상 이어온 인간의 활동에서 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같은 활동이 떨어져나와 순수예술로 격상되었던 것이다. 나머지 활동은 수공예와 대중예술(구두제작, 자수, 만담, 대중음악 등)로 격하되었다. 18세기 말에 영국 작가들은 여성은 천재가 될 수 없다고 말했고, 칸트는 여성이 학자가 되느니 차라리 수염을 기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이에 지은이는 말한다. “18세기의 새로운 천재 개념은 천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성이 될 것인가의 선택을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듯했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은 유색인이 섬세한 감수성이 부족해 예술적 취미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가난한 노동자, 무식한 시골지주, 여성, 예술과 사치를 혼동하는 유한계급도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 예술을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이들은 따로 있다고 본 것이다. 종합하면, 지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순수예술이 고대부터 전승된 것이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18세기에 마련된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술의 분리는 이제 거꾸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지만 지은이는 그럼에도 저항적인 실천을 강조한다. “우리 문화를 괴롭혀온 다른 이원론들처럼 순수예술 체계의 분리는 계속되는 투쟁을 통해서만 초월될 수 있다.” 선명한 견해와 우아한 서술이 돋보이고 80여장의 도판도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나온 지 14년이 흘렀고, 국내에서는 두 번째 번역본이다. 미학 전공자인 옮긴이는 기존 번역본에서 누락된 원전 출처와 주를 되살렸고, 지은이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번역의 정확성을 높였다. 새 한국어판 서문도 실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래리 샤이너 지음, 조주연 옮김
인간의기쁨·2만3000원 ‘예술’이라는 관념의 변천사라고나 할까. 미국 일리노이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래리 샤이너의 역작 <순수예술의 발명>은 순수예술이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복합체로서 출현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지은이는 ‘순수예술’이라는 관념에 대해 “계급과 성의 이해관계로 얼룩진 최근의 편협한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예술은 역사적으로 ‘발명’된 관념이라는 얘기다. 16~17세기에는 미술관 대신 ‘진기품 진열실’이 있었다. 고대부터 연극이나 연주회는 종교행사 또는 오락의 한 부분이었다. 전통적인 개념의 ‘예술’이 구분된 건 18세기에 이르러서다. 2000년 이상 이어온 인간의 활동에서 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같은 활동이 떨어져나와 순수예술로 격상되었던 것이다. 나머지 활동은 수공예와 대중예술(구두제작, 자수, 만담, 대중음악 등)로 격하되었다. 18세기 말에 영국 작가들은 여성은 천재가 될 수 없다고 말했고, 칸트는 여성이 학자가 되느니 차라리 수염을 기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이에 지은이는 말한다. “18세기의 새로운 천재 개념은 천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성이 될 것인가의 선택을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듯했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은 유색인이 섬세한 감수성이 부족해 예술적 취미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가난한 노동자, 무식한 시골지주, 여성, 예술과 사치를 혼동하는 유한계급도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 예술을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이들은 따로 있다고 본 것이다. 종합하면, 지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순수예술이 고대부터 전승된 것이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18세기에 마련된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술의 분리는 이제 거꾸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지만 지은이는 그럼에도 저항적인 실천을 강조한다. “우리 문화를 괴롭혀온 다른 이원론들처럼 순수예술 체계의 분리는 계속되는 투쟁을 통해서만 초월될 수 있다.” 선명한 견해와 우아한 서술이 돋보이고 80여장의 도판도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나온 지 14년이 흘렀고, 국내에서는 두 번째 번역본이다. 미학 전공자인 옮긴이는 기존 번역본에서 누락된 원전 출처와 주를 되살렸고, 지은이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번역의 정확성을 높였다. 새 한국어판 서문도 실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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