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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식인들이여, 상아탑에 갇혀 지내라 제발”

등록 2005-10-10 17:08수정 2005-10-10 17:34

“지식인들이여, 상아탑에 갇혀 지내라 제발” 김경만 교수
“지식인들이여, 상아탑에 갇혀 지내라 제발” 김경만 교수
김경만 교수 ‘담론과 해방’
“상아탑에 갇혀 있다”는 말은 한국 지식인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다. 그런데 지식인들을 향해 ‘제발 상아탑에 갇혀 지내라’고 촉구하는 책이 나왔다.

김경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사진)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간한 <담론과 해방>(궁리 펴냄)을 통해 “한국 사회과학계에 팽배한 반이론적 문화”를 비판한다. 그가 말하는 반이론적 문화란, “실천이라는 미명 아래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적 논쟁을 상아탑 속의 안주라고 외면”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지식인들이 이론 논쟁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데 게으르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간간이 나온 지식인들의 자성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자들의 운동가·정치가 변신
섣부른 현실 개조론에 경고장

그런데 김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이론이 실천을 이끌 수 있다는 학계의 통념에 엇장을 건다. “이른바 ‘이론적 이해’를 토대로 좌파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라고 묻는다. 그가 보기엔 실천적 이념이라고 일컫는 상당수 이론은 개혁을 준비하는 사람들한테 이데올로기적으로 수용됐을 뿐이다.

<담론과 해방>은 섣불리 현실을 개조하려들지 말고, 이론 그 자체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지식인들에게 보낸다. “사회운동가 또는 정치가로 변신한 사회학자들 대신 학자가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여기에 김 교수 주장의 ‘논쟁적’ 핵심이 담겨 있다.

그가 제시하는 길은 추상적 이론의 영역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실천적 학자’로 꼽는 하버마스 등도 시사와 정책의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높은 추상의 영역에서 이론의 업적을 쌓아 올렸다. 서구 지식인들의 이론과 한판 대결을 벌일 정도의 ‘실력’을 쌓는 게 한국 지식인들의 급선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실천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쟁쟁한 학자들의 이론틀을 이론적 비판을 통해 해체했다. <담론과 해방>은 부르디외, 기든스, 하버마스, 로티 등을 도마에 올려놓고, 각각의 이론 구성에 놓인 허점들을 파고들었다. 김 교수는 특히 이들 모두가 내포하고 있는 ‘현실 변화에 영향력을 주는 이론’이라는 전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서구의 거장들을 상대로 그가 펼친 전투는 거칠게 표현하면 “실천적 이론이라는 환상을 버려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다. 지식사회학과 이론사회학을 전공한 김 교수의 해체와 비판이 최종적으로 어디를 향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특히 한국 지식인들을 향하고 있는 그의 비판이 과연 한국적 상황에 걸맞는지도 논란거리다. 그러나 미국에서 동시 출간할 정도로 ‘서구 이론의 본토에서 제대로 이론을 겨뤄보고 싶다’는 학자적 야심은 평가할 만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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