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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 김수행 교수 별세

등록 2015-08-02 14:43수정 2015-08-02 22:14

한국사회 구조적 모순 비판한 ‘지성’ 눈감다
서울대 정년퇴직을 앞두고 2007년 학교 연구실 앞 벤치에 앉아 소회를 밝히던 모습. 그는 퇴임 뒤에도 왕성한 연구와 활동을 펼쳤다. 김경호 선임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대 정년퇴직을 앞두고 2007년 학교 연구실 앞 벤치에 앉아 소회를 밝히던 모습. 그는 퇴임 뒤에도 왕성한 연구와 활동을 펼쳤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장)가 1일 오전 1시30분(현지시각 7월31일 오전 10시30분) 별세했다. 향년 73.

한국사회경제학회는 김 교수가 미국에 자녀를 만나러 갔다가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2일 밝혔다. 사인은 심장마비. 장례는 3일 오후 3시 미국 유타주 모아브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마르크스 ‘자본론’ 국내 첫 완역
서울대 최초 ‘마르크스 전공’ 교수
국내 비주류 경제학 연구 물꼬 터
어린이·일반인 위한 저술도 활발

자녀 보러 미국 갔다가 심장마비
오늘 가족장… 학계 “고인 뜻 이어야”
최근까지 ‘자본론’ 개역작업 몰두

김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처음 완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까지 금서목록 맨 윗자리를 차지했던 <자본론>(비봉)을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완역했고, 최근까지도 <자본론> 전면개역 작업에 몰두해왔다. 비봉출판사 박기봉 대표는 “<자본론> 전 5권을 완전히 고쳐 평소 지론이 그랬듯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손봐서 곧 인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며 “표지 디자인까지 시안 중 한가지를 낙점하고 미국으로 떠났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번역한 <자본론> 발간은 경제학계를 넘어 한국 사회와 지성사에 큰 영향을 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김경호 선임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한겨레> 자료사진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번역한 <자본론> 발간은 경제학계를 넘어 한국 사회와 지성사에 큰 영향을 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학문적 삶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194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1982년 런던대에서 마르크스 공황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한신대 무역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정운영 교수(작고)와 함께 윤소영·강남훈 교수를 영입하고 경제과학연구소를 만들어 제도권 마르크스주의경제학 교육과 연구의 물꼬를 텄다. 학내 민주화 투쟁을 빌미로 1987년 해임된 뒤 1989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부임했다. 2008년 퇴임 뒤에는 성공회대 석좌교수로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그의 서울대 채용을 둘러싸고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제도화의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1988년 4월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자치회는 전공교수 자리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를 교수로 영입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 안에서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 교수들로 차 있었고, 학생들은 교수 면담, 수업 거부, 집회와 농성을 통해 학교 쪽을 압박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신정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를 뽑는다면 김 교수님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었고 그분을 모셔오고 싶어서 대학원생 상당수가 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2008년 서강대에서 열린 토론회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함께 입장하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한겨레> 자료사진
2008년 서강대에서 열린 토론회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함께 입장하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그는 치열하게 연구하는 학자였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했으며 교육자로서도 많은 후학을 배출했다. 강단에만 머물지 않고 60종이 넘는 번역·저서와 논문, 대중강연으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민주·복지·노동자 권리 향상 등과 연관시켰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판적 학문의 불모지에서 정치경제학이라는 비판의 무기를 전수해주신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제자인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또한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역량을 갖춘 학자로서 시대적 사명감으로 비주류 경제학의 학문적 진작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2008년 서울대 정년퇴임 뒤 학계가 놀랄 만큼 더욱 왕성한 대외활동과 학문적 활동을 겸했다. 2007~2008년 세계경제위기 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강조했다. 이는 시장과 자본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새 경제체제를 가리킨다.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2008), <세계 대공황>(2011),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2012), <자본론 공부>(2014) 등을 펴냈다. 주류 경제학의 고전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완역 발간(1992)한 것도 그다.

그런 그의 타계 소식을 접한 학계 분위기는 침통하다. 더욱이 2008년 그의 퇴임 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가 지금까지 서울대에 영입되지 않고 있어 연구 연속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나온다. 김 교수의 퇴임과 더불어 그해 서울대 경제학 대학원생들은 20여년 전 선배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학문성 다양성을 위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를 후임으로 선발해달라고 호소하는 대자보를 붙인 바 있다. 다른 대학 교수 80여명도 서울대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 채용을 요구했지만 이 바람은 지금까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성공회대, 경상대 등 일부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연구자들이 배출되고는 있지만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수도권 대학, 거점 국립대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후속 연구자 학계 진입은 거의 막혀 있다시피 하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수행 교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지향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나침반 같은 글을 많이 남겼는데, 서울대 안에서 정치경제학 연구자들의 맥이 끊겨 너무도 아쉽다”고 말했다. 정성진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또한 “김 교수 퇴임 뒤 지금까지 한국 강단 경제학은 미국식 주류 경제학으로 거의 독점되다시피 한 상황이며, 비주류 경제학을 공부하는 후속 연구자들의 진출이 힘들어 이를 개선하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경제학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김 교수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 행사 등을 논의중이다.

이유진 김규남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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