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최인호의 소설 <별들의 고향>은 남성 판타지를 자극하며 ‘호스티스 소설’의 유행을 불러왔다. 사진은 신성일과 안인숙이 주연한 이장호 감독 영화 <별들의 고향>(1974)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광복 70년, 책읽기 70년] ⑦ 1970년대의 독서 개관
잡지 〈샘터〉, 〈뿌리깊은 나무〉
다른 편에서는 관변독서운동
전국에 마을문고, 직장문고 설치
초중고교에선 독서경진대회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최인호 ‘별들의 고향’
‘자유부인’ 이래 최대 베스트셀러
창비는 호스티스소설이라 뭉개고
대항마로 황석영 ‘객지’ 내세워 ‘긴급조치 세대’ 저항문화 급속확산
한편에선 ‘저하늘에도 슬픔이’
또다른 한편 ‘난쏘공’이 펑 터져 한 인터뷰에서 최인호는 ‘젊음(은)’이라는 단어를 세 번 잇달아 사용하며 “젊음, 그리고 젊은 감정의 순수함을 꾸밈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젊은 독자들에게 파고드는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자기가 “특히 여대생에게 어필하는” 능력이라고도 했다. 그의 소설에서는 모두 청춘 남녀들이 등장하여, 당시 젊은이들의 (연애) 감정과 사회의식 그리고 생생한 입말을 그려보였다.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같은 대사 덕분에 엄청나게 유명해진 ‘경아’라는 여자 주인공은 남성 판타지가 투사된 존재였다. 경아는 키 155㎝, 가슴둘레 78㎝, 몸무게 44㎏의 가냘픈(그러나 왠지 개방적인?) 육체를 가진 순진하고 첫사랑 같은 존재로 묘사되었다. 젊은 남자 회사원들은 술집에서 ‘경아를 위하여’라면서 건배했고, 젊은 여성들도 ‘사랑꾼’ ‘경아’에 대해 어떤 동일시를 했다. 엄청난 화제 속에 영화 제작이 결정되자 자기가 경아 역을 맡겠다며 나선 여배우들도 줄을 섰다 한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최인호의 소설 <별들의 고향>은 남성 판타지를 자극하며 ‘호스티스 소설’의 유행을 불러왔다. 사진은 신성일과 안인숙이 주연한 이장호 감독 영화 <별들의 고향>(1974)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최인호 소설 ‘별들의 고향’
박광수 감독 영화 (1995) 중 전태일 역을 맡은 배우 홍경인의 분신 장면. 자료사진
분신으로 떠오른 전태일 일기, 지하로 떠돌며 젊은이들 삶을 바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등사판 형태로 손에 손으로
조영래가 뜨거운 문제로 정리 다 아는 얘기지만 전태일의 이름을 빼놓고 1970년대 초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 그의 죽음은 사회 전반을 충격하고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같은 ‘치명적인’ 말을 남겼기에, 김문수·조영래·장기표처럼 ‘엘리트 코스’로 살아가던 사람들뿐 아니라, <전태일 평전>을 읽고 간접적으로 그 삶과 죽음을 목격한 무수한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과 감화를 주었다. 또한 자기 몸에 불을 댕기고 내달렸기에 많은 타인들의 죽음에도 영향을 주었다. 제도교육을 별로 받지 못했지만 믿기 어려운 뛰어난 지성과 영성을 지닌 22살 청년 전태일은 공책 7권 분량의 일기를 남겼다. 일기 속에는 어린 전태일이 좀 비뚤배뚤한 글씨로 자기의 미래 꿈에 대해 쓴 것도 있고, 박정희를 ‘국부’로 칭하며 어린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을 살펴봐달라고 호소한 (부치지 못한) 편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일기장에다 김소월의 시도 써놓고 한자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 일기는 전태일 사후 누군가들에 의해 옮겨 적힌 후 등사판 인쇄로 몇십부쯤이 돌아다녔다 한다. 대학생들 중에 이를 직접 본 사람들이 있었다.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은 당연히 이 일기를 기초로 써진 것이다. 일기 원본은 동생 전태삼이 보관했다가 2013년에 공개했다.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기쓰기가 언제부터 초중등 교육의 주요 항목이 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일기쓰기는 제도교육이 하는 일 중에서 가치 있는 얼마 안 되는 일의 하나 같다. 어떤 식으로든 일기쓰기는 글쓰기와 자의식의 형성에 효능을 가지고 있다. 전태일에게도 일기쓰기는 그의 지성과 노동자로서의 자기의식을 키우는 데 단단히 한몫했던 것 같다. 뜨거운 문체로 쓰인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1983)은 한국 논픽션 문학의 고봉(高峯)이다. 이 책은 1980년대 중반까지는 복사본과 ‘지하문학’으로 유통되었지만,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수백만 부가 읽혔다. 그리고 ‘전태일’은 90년대엔 영화가 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십시일반 제작에 참여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앞서 1978년에 일본에서 전태일과 그 어머니 이소선을 소재로 만든 <オモニ>(어머니)라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 있던 반박정희-민주화운동 단체였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가 만든 이 리얼리즘 영화의 존재는 ‘전태일사’에 있어 묻혀버린 한 장면이다. 천정환 교수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등사판 형태로 손에 손으로
조영래가 뜨거운 문제로 정리 다 아는 얘기지만 전태일의 이름을 빼놓고 1970년대 초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 그의 죽음은 사회 전반을 충격하고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같은 ‘치명적인’ 말을 남겼기에, 김문수·조영래·장기표처럼 ‘엘리트 코스’로 살아가던 사람들뿐 아니라, <전태일 평전>을 읽고 간접적으로 그 삶과 죽음을 목격한 무수한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과 감화를 주었다. 또한 자기 몸에 불을 댕기고 내달렸기에 많은 타인들의 죽음에도 영향을 주었다. 제도교육을 별로 받지 못했지만 믿기 어려운 뛰어난 지성과 영성을 지닌 22살 청년 전태일은 공책 7권 분량의 일기를 남겼다. 일기 속에는 어린 전태일이 좀 비뚤배뚤한 글씨로 자기의 미래 꿈에 대해 쓴 것도 있고, 박정희를 ‘국부’로 칭하며 어린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을 살펴봐달라고 호소한 (부치지 못한) 편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일기장에다 김소월의 시도 써놓고 한자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 일기는 전태일 사후 누군가들에 의해 옮겨 적힌 후 등사판 인쇄로 몇십부쯤이 돌아다녔다 한다. 대학생들 중에 이를 직접 본 사람들이 있었다.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은 당연히 이 일기를 기초로 써진 것이다. 일기 원본은 동생 전태삼이 보관했다가 2013년에 공개했다.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기쓰기가 언제부터 초중등 교육의 주요 항목이 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일기쓰기는 제도교육이 하는 일 중에서 가치 있는 얼마 안 되는 일의 하나 같다. 어떤 식으로든 일기쓰기는 글쓰기와 자의식의 형성에 효능을 가지고 있다. 전태일에게도 일기쓰기는 그의 지성과 노동자로서의 자기의식을 키우는 데 단단히 한몫했던 것 같다. 뜨거운 문체로 쓰인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1983)은 한국 논픽션 문학의 고봉(高峯)이다. 이 책은 1980년대 중반까지는 복사본과 ‘지하문학’으로 유통되었지만,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수백만 부가 읽혔다. 그리고 ‘전태일’은 90년대엔 영화가 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십시일반 제작에 참여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앞서 1978년에 일본에서 전태일과 그 어머니 이소선을 소재로 만든 <オモニ>(어머니)라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 있던 반박정희-민주화운동 단체였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가 만든 이 리얼리즘 영화의 존재는 ‘전태일사’에 있어 묻혀버린 한 장면이다. 천정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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