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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2015년 ‘해전사’를 다시 읽는 사람들

등록 2015-08-18 19:10

한때 독재정권이 ‘금서’로 지정
지금껏 개정판까지 75만부 팔려
역사문제연구소 세미나 열어
“해방전후 연구서 가운데
이 책을 넘어서는 책 없어”
해전사
해전사
1979년 10월15일, ‘그 책’이 나왔다. 훗날 줄여 <해전사>로 일컫게 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지음) 1권이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한길사 김언호 사장의 기획안이 출발점이었다. “해방 전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공간이었는데 당시는 연구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이대로라면 어떻게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키겠냐는 고민이 깊었다.” 김 사장은 18일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해방전후사와 분단 과정을 규명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안을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 언론인 송건호 선생에게 보여주었다. 송 선생은 1권 맨 앞에 실린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이라는 논문을 건넸다.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한테서는 ‘일제 말 친일 군상의 실태’라는 글을 받았다.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전 동아일보 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 등 12명의 기라성 같은 저자들이 1권 저술에 참여했다.

<해전사> 1권은 발간 열흘 만에 4500부나 팔려나갔다. 나머지 초판 500부는 압수되어 곧장 ‘금서’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숨진 ‘10·26’ 직후 문화공보부 관계자가 “친일 좀 한 것이 뭐가 문제냐”며 김 대표를 질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6권까지 나온 <해전사> 시리즈(사진)는 지금까지 개정판을 통틀어 75만부가 팔렸다. 김 대표는 “당시 치열한 지식운동 덕이었다”고 회고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1권만 40만부가 나갔어요. 당시는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시대였죠. 이제 책 읽는 시대는 끝나버렸습니다. 5년께 전에 후속작인 7권을 내자는 기획회의를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요즘 이 책을 다시 읽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연 ‘<해전사> 다시 읽기’ 세미나. 지난 4월부터 진행한 이날 마지막 세미나는 장장 4시간 동안 열띠게 진행되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연 ‘<해전사> 다시 읽기’ 세미나. 지난 4월부터 진행한 이날 마지막 세미나는 장장 4시간 동안 열띠게 진행되었다.
지난 4월부터 역사문제연구소는 해방 70년을 맞아 ‘해전사 다시 읽기’ 세미나를 시작했다. 지난 6일, 마지막 세미나는 <해전사> 3~6권을 읽어오는 자리였다. 30~50대 역사학 연구자, 역사 교육자, 작가, 대학원생, 교수 등 10여명이 밤 11시까지 4시간 넘게 불꽃 튀는 토론을 벌였다.

“해방 직후를 묘사하며 ‘모순구조’ ‘대립구조’ 같은 단어를 쓰는데, 지금은 너무 생경한데요.” “그때는 사회운동, 학술운동 활황기니까 흔히 쓰던 말이었죠.” “‘민중’과 ‘혁명세력’을 동일하게 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그때를 좌우 갈등으로만 보는 게 더 이데올로기적인 것 같은데요?”

1982년 대학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한 전원배 중랑 민중의집 운영위원은 “어마어마하게 읽힌 책”이라고 회고했다. “저 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교 때까지 배운 것과 너무 다른 역사였으니까요. 당시엔 1권만 읽었기에 총 6권 전체를 조망하고 싶어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연구자 박창희(성균관대 사학과 박사수료)씨는 <해전사> 1권에 대해 “현재 사회 문제의 원인과 기원을 일제 당시의 역사에서 밝혀보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해전사>가 잊혀져가는 느낌도 없지 않아요. 10여년 전만 해도 현대사 전공자들은 이 책의 논문 한두편은 반드시 읽어야 했지만, 지금은 이 책이 과도한 정치, 운동, 사상지향이라며 비판하고 끝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사회문제와 현실 문제를 역사학 안에 투영시켜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는 시도 자체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해방 공간을 연구하는 신진 연구자들도 부족하고요.”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아직까지 해방전후에 대한 연구서들 가운데 <해전사>를 넘어서는 책이 없다”며 “1980년대 내내 큰 영향력을 지녔던 이 책이 당시 ‘시대’에 개입한 힘을 읽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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