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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봉준의 ‘인민’과 김옥균의 ‘개화파’가 함께 빚은 ‘민주주의 역사’

등록 2015-08-20 20:55수정 2015-08-21 10:21

식민 치하에서 인민은 서울 종로(사진)를 비롯한 도심에서 3·1 만세운동을 벌였다. 지은이는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가 다름 아닌 민주주의였다고 평가한다. 책과함께 제공
식민 치하에서 인민은 서울 종로(사진)를 비롯한 도심에서 3·1 만세운동을 벌였다. 지은이는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가 다름 아닌 민주주의였다고 평가한다. 책과함께 제공
19~20세기 한국 민주주의 맹아
전봉준-김옥균 동시 초대해 분석
역사학-사회학 엮은 방법론 선봬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시대의 건널목,

19세기 한국사의 재발견
김정인 지음/책과함께·2만2000원

‘민족’도 ‘민중’도 아닌 ‘민주주의’ 관점의 역사 인식을 제안한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나라를 운영하고 사회와 개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임에도 ‘역사’를 다룰 때만큼은 유독 외면 받아온 까닭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는 1801년 공노비 해방부터 1919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까지 118년을 분석하며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살폈다. 19세기 한국사를 민주주의의 역사로 바라보는 첫 시도다.

지은이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인민과 개화파가 함께 빚은 역사”라고 설명한다. 전봉준이 상징하는 ‘인민’과 김옥균이 대표하는 ‘개화파’를 한자리에서 동등하게 만나도록 한 것도 처음이다. 그간 역사학계는 농민항쟁, 사회과학계는 근대의 출발로서 개화운동에 집중했기에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조우를 주선한 셈이다. 지은이는 민주주의 형성 과정을 7개의 문화적 개념으로 나눠 써내려갔다. 인민, 자치, 정의, 문명, 도시, 권리, 독립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뜨겁게 복원한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사회는 중세 봉건시대를 지탱하던 신분제가 해체하면서 시작했다. 1801년 공노비 해방은 그 불씨였다. 이후 노비제는 100여년에 걸쳐 완전히 폐지됐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저항, 갑오개혁이라는 위로부터의 제도화가 만난 결과였다. 노비, 백정, 여성은 19세기 농민항쟁과 농민전쟁을 통해 ‘인민’으로 탄생한다. 독립협회는 신분제 차별을 벗어난 평등한 개별적 존재로서 ‘인민’이 태어나야 ‘문명자강’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고 노비제 잔재 청산운동을 벌였다.

종교 공동체는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었다. 천주교, 동학 등 종교가 꾸린 대안의 공동체 안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인 ‘인민 자치’가 싹텄다. 천주교와 동학이 평등한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문화혁명’이 가능했다. 신분 해방과 자치의 경험을 쌓은 19세기 인민들은 정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변란(1811년 평안도 농민전쟁), 민란(1862년 농민항쟁), 전쟁(1894년 동학농민전쟁) 등으로 이어진 19세기 농민항쟁은 그저 중세에서 탈피하는 ‘반봉건 항쟁’만이 아니었다. 조세정의와 경제정의의 실현, 부정부패 없는 정의로운 사회와 나라를 염원하는 인민의 역량이 터져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동학농민전쟁은 “19세기 인민이 100년을 준비한 농민항쟁의 절정”이었다. “전봉준은 서양 문명을 말하지 않았으나, 민주주의를 알고 있었다.”

인민은 변화를 갈망했고, 개화파는 문명화를 위해 신문을 만들고 학교를 지었다. 1896년 4월7일 창간한 <독립신문>의 문명화 전략은 “민주주의 계몽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개인이 자기 삶의 주관자가 되어야 하며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의식을 가질 때 문명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인민은 ‘개인’으로 거듭났고 인권의식이 싹텄으며 민권론이 등장했다. 대한제국 황제와 권력은 그러나 전제군주정의 강화를 택했다. 지식인과 인민 중에는 의회를 갖춘 입헌군주제를 꿈꾸는 이들이 나타났지만 결국 의회 건설은 좌절되었고 나라를 잃게 됐다. 민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서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다. 인권과 민권의 추구는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지은이는 3·1운동에서 민족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적논리가 다름 아닌 민주주의였다고 평가한다. 1919년 3·1운동과 민주공화정의 탄생은 근대와 현대의 분기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1801년부터 100년이 넘는 ‘민주주의의 탄생’을 복원한 결과다.

지은이는 전화 인터뷰에서 “민주주의가 안에서 생긴 것이냐 밖에서 온 것이냐 무 자르듯이 할 수 없다”며 “민중의 대표인 전봉준과 밖으로부터 문화를 수용한 개화파 김옥균의 만남, 동학과 독립협회의 결합 등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 역사학계의 민족주의, 민중주의적 시각을 부정하지 않지만 좀더 보편적 가치가 강한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본다면 더욱 밝은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도입했기에, 박명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국민·인민·시민>(2009)과 같은 과 송호근 교수의 <인민의 탄생>(2011) <시민의 탄생>(2013)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고 재해석하는 데서 역사학자로서 지은이의 역량이 발휘돼 앞선 사회학적 분석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역사성을 복원하려는 3부작 첫권이다. 2부는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가제)로 독립운동 속의 민주주의 문화를 다루고, 3부 <경쟁하는 민주주의>(가제)는 식민지 시대 전수된 파시즘과 경쟁하는 민주주의의 문화를 분석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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