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길 끝에서 만난 미술…미술을 품은 마을

등록 2015-09-03 21:34수정 2015-09-06 13:43

미술마을 인문여행
임종업 글·박홍순 사진/소동·1만6500원

“화가 나더라도 성질이 꺼질 때 이야기를 해라.”(추귀례) “찬물만 먹고 살아도 포부를 크게 가져라.”(조규덕)

화순 성안마을에 가면 집집 담벼락에 한편의 시가 걸려 있다. 어떤 금언보다 귀에 쏙 꽂히는 싯귀는 집주인이 아들딸에게 남기고픈 말이다. “작가 아닌 마을을 드러내야 한다”는 기획자와 주민의 하이파이브가 짝짝 맞아떨어져 완성된 작품이다. 읍내 어린이 대상 미술대회 입상작이 자치센터 외벽이 되는 참여미술은 현재진행형이다.

‘문화 새마을운동’인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쇠락한 마을을 미술로 꽃피우고 있다. 지난 5년간 옛 자취를 간직한 76개 마을에서 미술난장이 벌어졌다. 이 책은 그중 남원 혼불마을, 정선 그림바위마을 등 10곳을 미술기자의 안목으로 둘러봤다. ‘마을미술’의 작품들이 마을이 품은 역사와 주민들이 빚어내는 살가운 기운으로 엮였다. 사람냄새 그득한 미술책이면서 역사책으로도 손색없다. 점을 찍고 오는 여행이 아닌 선을 잇는 느릿한 여행을 충동질하는 점에서 여행서이기도 하다. 하루 몇번 안 다니는 버스를 타고 고샅길, 구불함을 간직한 논밭, 오래된 느티나무와 마을이 된 미술로 들어가 시간의 낙차를 느껴보라니 말이다.

마을미술은 무엇보다 동네의 표정을 바꿨다. 포토존이 된 ‘어린왕자와 사막여우’가 바라보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이 그런 곳이다. 한국전쟁 뒤 태극도 교도 거주마을로 형성돼 한지붕 두집 형태의 ‘최소의 집’이 색종이처럼 붙어 있는 이곳에 34개의 작품이 녹아 마을 자체가 되자, 지난해 80만명의 방문객이 찾아들었다. 영천 별별미술마을인 가래실은 수십년간 들리지 않던 아이들 목소리로 왁자지껄해졌다. 비가 적고 별밤이 잦은 특색을 살린 ‘물과 별’ 오브제의 작품들이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재미삼아 만든 앞개천 썰매장이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이들을 굶겨보낼 수는 없기에 60년 손맛 논실댁의 ‘주말 떴다 식당’도 차려졌다.

고씨굴랜드가 변신한 영월 아트미로는 공공미술의 모범을 보여준다. 위성지도로 보면 1차 프로젝트는 꼬마 자동차, 2차 프로젝트는 차 꽁무니에 달린 트레일러 모양인 ‘아트 미로’는 정선을 향해 내달린다. ‘참 좋더라’는 반응은 왜일까? 지은이는 흉물이 된 놀이시설이 작품으로 바뀌는 과정의 즐거움이 “롤러코스터 타기” 같고, 동화 소재의 작품에서 원작 의미와 작가의 변주를 비교하면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어서 “관람 자체가 하나의 놀이판이 됐다”는 본질을 꿴다.

마을과 미술 사이의 경계선을 미처 지우지 못한 곳도 있다. 음성 동요마을의 ‘퐁당퐁당’ 작품 속 소녀는 쪽창을 통해 태우다 만 시꺼먼 쓰레기를 바라보고 있고, ‘꽃밭에서’ 작품은 유기질 비료더미에 절반이 가려져 있다. 안동 벽화마을은 “가히 무정부 상태”다. 벽화가 시와 동, 중앙 부처 등 다양한 발주처에서 제각각 진행된 탓에 예술이라는 이름의 페인트칠이 안동의 우아한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다. 한 마을 지도자의 푸념도 들려온다. “마을이 발전하기를 바라며 기를 썼는데, 내 발등 내가 찍은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땅값이 올라 귀농길이 막혔거든요.”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비밀의 은행나무숲’ 50년 만에 첫 일반 공개 1.

‘비밀의 은행나무숲’ 50년 만에 첫 일반 공개

‘한강 효과’ 주문한 책이 밀려온다…마음 가라앉는 즐거움 아는 당신께 2.

‘한강 효과’ 주문한 책이 밀려온다…마음 가라앉는 즐거움 아는 당신께

“노벨상 작가 글이니”…쉽게 손댈 수 없었던 오자, ‘담담 편집자’ 3.

“노벨상 작가 글이니”…쉽게 손댈 수 없었던 오자, ‘담담 편집자’

1600년 전 백제인도 토목공사에 ‘H빔’ 사용했다 4.

1600년 전 백제인도 토목공사에 ‘H빔’ 사용했다

“한강 ‘소년이 온다’ 탈락 잘못” 출판진흥원장, 10년 전 ‘블랙리스트’ 사과 5.

“한강 ‘소년이 온다’ 탈락 잘못” 출판진흥원장, 10년 전 ‘블랙리스트’ 사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