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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광주항쟁 이후 ‘처세서’ ‘마음수양책’이 풍미한 까닭

등록 2015-09-03 22:40수정 2015-09-04 11:29

자기계발서 시장은 1970년대 커져 광주항쟁 이후 ‘처세서’라는 말이 본격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탤런트 오현경·서인석·장용 등이 출연한 1987년 방송 드라마 ‘티브이 손자병법’(위 사진)은 직장 내 처세술과 함께 샐러리맨의 애환을 그려 큰 인기를 모았다. 아래는 1950~60년대 많이 읽히던 와 1980년대 나온 . KBS 제공, 자료사진
자기계발서 시장은 1970년대 커져 광주항쟁 이후 ‘처세서’라는 말이 본격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탤런트 오현경·서인석·장용 등이 출연한 1987년 방송 드라마 ‘티브이 손자병법’(위 사진)은 직장 내 처세술과 함께 샐러리맨의 애환을 그려 큰 인기를 모았다. 아래는 1950~60년대 많이 읽히던 와 1980년대 나온 . KBS 제공, 자료사진
[광복 70년, 책읽기 70년] ⑨ 근대화 연대의 자기계발ㆍ처세서
일본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 역사소설 <대망>은 1970년에 처음 한국에 번역·수입되었다. 이 소설의 원제는 ‘德川家康’(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즉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하고 새로 막부를 개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사무라이 영웅’들을 다룬, 매우 ‘일본스러운’ 일종의 정치소설이다. 전집류가 고전하던 때에 이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여러 가지 잡음이 생겼다. 곧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원제 그대로 출간된 서적이 나오는 등 고질적인 중복·해적 번역 출판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별 근거 없이 이 일본 소설이 ‘저질’이며, 민족주체성을 갉아먹는 못된 책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런데 이때 일본산 처세서와 ‘상술서’가 여럿 번역·수입되는 현상도 함께 나타났다. 왜 그랬을까? <대망>이 ‘싸나이’ 그리고 ‘아저씨’들의 ‘인간 경영’ ‘처세술’ 서적처럼 읽힐 요소를 듬뿍 갖고 있었고, 또 그렇게 읽혔기에 업자들은 새삼 처세서 시장의 잠재력을 본 것이었다. 일부 계층에서 <삼국지>가 그렇게 수용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문학화된 자기계발서’의 한 원형이랄까?

■ ‘자기계발’이라는 문제

자기계발서는 특히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종류의 책이지만, 지식인이나 평론가들에겐 가장 자주 욕을 먹는다. ‘자기계발’에는 단칼로 자르기 어려운 복합적인 함의가 들어 있다. 우주 전체에 값하는 자기의식(‘천상천하 유아독존’)과 무엇에도 환원할 수 없는 개체적인 생명-몸(‘신체발부 수지부모’는 헛소리)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인격·관계·신체·경력·자원을 도야·운영하는 총체적인 문제와 ‘자기계발’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양·수양·처세’와도 직통하는 ‘자기계발’의 역사는 춘추전국시대나 그리스·로마 사회에 이른다. 철학자 푸코는 특히 이를 자아의 테크놀로지라 이름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왜 비판을 받을까? 자기계발은 세속의 운영 원리와 규범에 맞게 자신의 삶을 주체화(또는 대상화)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특히 현대에 이르러 그 최종적 목적은 ‘성공’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경제’를 영위하는 주체의 세속적 행복이나 영달의 문제가 자기계발의 최종심급처럼 돼버린 것이다. 비판도 이런 데 초점이 두어진다. 세속적 행복이나 영달이 ‘진정한 삶’이나 ‘자아실현’의 진정한 목표는 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자기계발서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에 닥친 신자유주의 시대의 총아이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1998) 같은 책 이후에 나타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기실 그렇지 않다. 1910~20년대부터 ‘처세·수양’과 돈 벌기, 인간관계 운영하기 등을 다룬 ‘범(凡)자기계발서’는 근대 독서문화의 핵심 항목이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와 그 수행은 새롭게 근대인에게 주요한 삶의 과제가 됐기 때문에, 식민지 시대에도 다양한 수양·처세·사교술 책이 나왔다. 요컨대 자기계발서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이고, 또한 자본주의가 주조하는 인간성·자기정체성의 역사라 할 수 있다.

■ ‘자기계발’(서)의 여러 기계

학교와 직장에서 사회적 인정과 물질적 성공을 얻어내기 위한 적극적 활동의 총칭이 ‘처세’라면, 다 채울 수 없는 물욕과 인정의 욕망을 조절하고 다스려, (차라리) 마음의 평화를 얻자는 것이 ‘수양’이다. 자기계발서는 이 같은 ‘처세’와 ‘수양’을 기본으로 하는데,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신자유주의가 전 사회와 전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마치 경영·경제학이 대학에서 그랬듯, ‘자기계발(서)’ 분야는 무지막지한 생산성과 놀라운 접속력을 가진 (들뢰즈적인 의미의) ‘기계’가 되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전체 판도가 ‘자기계발’ 바이러스 탓에 바뀌었다. ‘자기계발’서는 ‘경제·경영’ 도서들을 축으로 광범하게 세포분열했다. 처세·자기수양·일상도덕에 관한 책들은 이른바 ‘고전’은 물론 인문학·문학도 자기계발 분야 책으로 둔갑하게 한다. 또한 ‘에세이·건강보건·동화·청소년·여성’ 등의 범주도 ‘자기계발’을 중심으로 (재)배치되었다. 최근 한국 처세서는 ‘글쓰기’와도 접속하고 있다 한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히트를 치고 글쓰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회장님의 글쓰기> <책 쓰기 혁명> 따위의 책도 잘 팔린다 한다. 이들 책이 작년의 ‘인문학 중심’의 출판계 풍향을 다시 ‘자기계발’로 가져오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70년대 일본 ‘대망’ 번역서 인기
정치소설이지만 처세서로 읽히자
아예 처세서·상술서 들여오기 시작

“자기계발 없는 삶은 기초없는 집”
경제지들 관련서적 위상 자리매김
광주항쟁 나던 1980년 이후부터
서점가 처세술 푯말 단 전문코너
카네기 처세술·유대인 상술 외에
‘사표를 써라’ 등 회사 대인관계 포함

전두환의 힘? 신자유주의의 힘?
확실한 것은 한국경제의 변화
토건붐과 땅값·물가 상승 따라
부와 성공에 목마른 독자층 양산

■ 자기계발(서)의 ‘종류’와 독자

자아의 테크놀로지는 ‘처세’ ‘자기 알기’ ‘자기 관리’ ‘자기 돌봄’ ‘자기 개발’ 등으로 구성되는데,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만을 놓고 굳이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은 세 종류가 있다.

첫째, 경제·경영서, 재테크 서적 같은 ‘적극형’ ‘공격형’ ‘세속형’. 이들 책에서 저자들은 환골탈태하기를 요청하며, 독자들의 불안과 경쟁심리를 자극한다. 주로 명령문으로 무능한 독자들을 꾸짖어 ‘내가 남보다 늦거나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초조를 자극한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것은 그 가장 적실한 예다.

둘째, 자기 자신과 ‘마음’에 더 집중하는 ‘평화형’ ‘수비형’ 자기계발서. ‘수양형’ ‘심리형’이라 해도 되겠다. 주관적 관념론에 기초한 주의주의적이라는 점은 첫 번째 유형과 비슷하지만 이는 대체로 더 ‘선하게’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자기연민(<아프니까 청춘이다>)과 ‘정신승리’는 기본이고, 약간 병적인 면도 있어 자학·자폐 같은 데로 독자를 인도할 수도 있다. 자아심리학과 불교, ‘힐링’ 그리고 각종 행복론이 이 유형과 가깝다. 이 책 저자들의 목소리는 ‘교주’나 멘토에 가깝다. 예컨대, 박근혜가 말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메시지는 2007~2008년 독서계를 강타한 <시크릿>과 같은 것이다. 이 기막힌 책의 부제는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었다.

셋째,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인 매뉴얼로 분류될 수 있는 ‘중간형’ ‘기능형’ 자기계발서. <아침형 인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메모로 나를 경영하라> <7번 읽기 공부 실천법> 등이 그렇다.

‘자기계발’의 주체는 세속과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이지만, 구체적으로 자기계발서의 독자는 샐러리맨 혹은 사장님, 혹은 그런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다. 이 샐러리맨은 대개 사무직·지식노동자이지만 계층 상승을 꿈꾸는 모든 노동자도 자기계발서의 독자가 될 수 있다. 서동진의 지적처럼 오늘날 무한 확장된 자기계발의 담론은 모든 주체에게 강요되거나 내면화되고 있는 규범이자 ‘테크닉’이다. ‘스펙 쌓기’나 재테크에 열중하는 대학생이나 주부·직장인뿐 아니라,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는 모든 ‘자기’들은 ‘자기’의 모든 것, 즉 돈과 경력, 라이프스타일과 몸, ‘마음’과 관계 및 ‘사랑’을 돌아보고(알기·성찰), 관리하고(관리·경영), 발전하게 하기 위해(계발·자조)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모두가 샐러리맨 혹은 경영자처럼 된 것이다.

■ 개발연대와 자기계발서 읽기

‘개발’과 ‘계발’은 그리 멀지 않다. 1950~60년대에 걸쳐 이미 <마음의 샘터>라든지, 버트런드 러셀이나 데일 카네기의 <행복론>이 많이 읽혔다. 또한 <당신은 담배를 끊을 수 있다>(백조사, 1958) <1일 24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40세까지 성공하는 법>(백조사, 1959)과 같이 상당히 구체적인 삶의 매뉴얼과 ‘자아의 테크놀로지’를 특정 독자층을 향해 설파하는 종류의 책들도 있었다. <남편사교에치케트>(고려출판사, 1955) <남편을 성공시키는 법>(백조사, 1959) <여성의 인생문답>(여원사, 1961) 등 여성과 주부를 겨냥한 ‘여성 자기계발서’의 원형에 해당하는 책들도 이미 나왔다. 그러나 원조·차관경제의 단계에서 아직 ‘자기계발’은 처세·수양·행복 담론에 주축이 놓여 있었다. 그나마 그 책들은 거의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것들이었다.

<대망>과 1970년대 일본 수입 처세서들은 더 심화된 자본주의를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2년 5월 <매일경제>의 기사는 <경영학 교과서> <샐러리맨·타부우집> 같은 신간을 소개하며 정확하게 자기계발서의 용도를 짚어주고 있다. ‘자기계발 없이 오늘날과 같은 기업사회에서 삶을 영위하려는 것은 마치 기초 없이 건축을 하는 것과 같다. 격동하는 국제기업경쟁의 와중에서 모든 기업과 인간은 함께 이에 대처할 때’라는 것이다. ‘자기계발 하는 주체’의 폭은 그만큼 커졌다.

그러나 자기계발 및 처세술 독서문화는 1980년대 초에 이르러 한번 더 전기를 마련했다. 자기계발·처세서 시장은 광주항쟁이 있었던 그해인 1980년 후반부터 고속으로 성장됐다. 언론에서 ‘처세서’라는 말도 이때 처음 본격적으로 상용되기 시작한다. 1984년이 되자 ‘정상에서 만나자’ ‘크게 놀자’ ‘하면 된다’ ‘지적인 여성’ ‘이기려면 버려라’ ‘사람을 움직이는 비결’ 등을 키워드로 한 처세서의 출판이 부쩍 늘었고 종로서적·교보문고엔 ‘역사·문학·예술’ 등처럼 ‘처세술’이란 푯말을 단 전문코너가 처음 만들어졌다. 거기 전시된 책들은 카네기 처세술 서적과 ‘유대인 상술’ 그리고 ‘적극적인 사고방식’ ‘사표를 써라’ 같은 회사 내의 대인관계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다.

전두환의 힘인가? 아니면 1980년대 초부터 서서히 밀려든 신자유주의(레이거노믹스·대처리즘과 그 세계화)의 힘인가? 확실한 것은 한국 경제가 1970년대 말의 끔찍한 토건개발붐과 지가 및 물가 상승을 거쳐 다른 단계로 가고 있었고, 그래서 무수한 졸부 ‘사장님’들과 ‘성공’에 목마른 샐러리맨들을 양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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