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수필’은 1920~30년대에도 꽤 활발하게 쓰였고 유명 작가들의 산문집·서한집·기행문집 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의 대중적 붐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듯하다. 이 시대의 에세이는 ‘60년대식’ 서구 지향적 지성과 교양의 산물이자 총아였다. 특히 전혜린·이어령·김형석·안병욱 등 젊은 학자-에세이스트들이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도 에세이 붐은 이어진다. 그런데 교양의 지형도 혹은 대중성의 구조 변화 때문에 이때의 붐은 분위기가 달랐다. 그것은 ‘한국 수필’ 붐이었다. 1972년 3월 <수필문학>이 창간되고 ‘수필 문단’이라는 단어도 사용되었다. 1976년 3월부터는 범우사의 ‘에세이 문고’(사진)도 나오기 시작했다. 1976년 8월 현재 30권까지 간행됐는데, ‘수필 문고’라고도 불린 이 문고본의 문학사·문화사적인 의미는 작지 않다.
첫째, ‘수필’이라는 말과 수필 문학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게 하며 한국 산문 문학사의 새로운 경지를 일구었다. 이 시리즈는 거개가 한국 문인·지식인·교수 등이 저자였다. 한국 수필 문학사의 ‘정전’으로 국어나 문학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거나 또는 그 이후에 그렇게 돼 거의 ‘국민 수필’이라 할 글들도 포함돼 있었다. 예컨대 피천득의 <인연>,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김진섭의 <백설부>, 이양하의 <신록예찬>,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이희승의 <딸깍발이> 그리고 법정스님의 <무소유> 등이다.
둘째, 이 시리즈는 문고본으로 간행되어 일상인의 독서문화에 파고들 수 있었다. 각 권 150~200쪽 정도의 작은 문고판으로서 첫 출시 당시 가격은 280원이었다. 당시 ‘3천만의 잡지’를 표방했던 <샘터>가 150원 내외, 가장 고급스럽던 잡지 <뿌리깊은 나무> 값이 550원 정도였다. 이 시리즈는 판매고도 만만치 않게 올려 80년대에 ‘범우문고’로 새로 제작됐다.
삶에 대한 (철학적) 관조와 통찰, 문명과 시대에 대한 온건한 비판을 내장한 이런 산문 문학은 ‘교양으로서의 독서’나 ‘일상사로서의 독서’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