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뉴욕시에서 연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게이 가죽족들. 현실문화 제공
‘성적 반체제 인사’ 루빈 단독저작
40년 학술연구 집대성한 문제작
여성 억압 기원 밝힌 ‘여성 거래’
섹슈얼리티 연구 ‘성을 사유하기’
금지되고 처벌받고 낙인찍힌
성적 변이와 일탈 분석 통해
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 제안
40년 학술연구 집대성한 문제작
여성 억압 기원 밝힌 ‘여성 거래’
섹슈얼리티 연구 ‘성을 사유하기’
금지되고 처벌받고 낙인찍힌
성적 변이와 일탈 분석 통해
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 제안
게일 루빈 지음, 신혜수·임옥희·조혜영·
허윤 옮김/현실문화·4만4000원 경악과 찬사가 양쪽으로 쏟아진 ‘문제작’이다. 낯설고, 충격적이고, 야하고, 짜릿하고, 난해하고,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일탈: 게일 루빈 선집>은 성인류학의 대가 게일 루빈 미시간대 교수의 40년 노작을 총 900여쪽으로 엮은 것이다. 그의 유일한 단독 저서로서, 2012년 퀴어인류학회의 루스 베니딕트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수록 논문 ‘여성 거래’와 ‘성을 사유하기’가 여성학 연구자들의 공부감으로 유명하다. 지은이 루빈과 저작권자인 듀크대 출판부조차 한국어판 판권 계약 제안을 받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급진성 때문에 미국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201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묶여 나온 책이 서구보다 훨씬 보수적인 한국에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1949년생인 루빈은 레즈비언이자 사도마조히스트(S/M·에스엠)로 커밍아웃한 문화인류학자다. 주된 연구분야는 에스엠, 성노동, 포르노그래피, 섹슈얼리티. 주변화하고 소외된 성애 인구집단에 몰두했다. ‘섹슈얼리티’가 젠더만큼이나 전복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보았던 루빈은 ‘일탈’로 치부되는 성적 실천 연구에 정열을 쏟았다. 성적 하위문화를 탐사했고 실천가로서 레즈비언 에스엠 그룹인 ‘사모아’를 창립했다. 실제 엄연히 ‘있는 것’을 ‘없어야 하는 것’이라며 금지하는 권력과 위계에 맞서 이론과 운동 양쪽으로 ‘쌍끌이 실천’을 한 것이다. 여성 억압의 기원을 해명한 고전 ‘여성 거래’(1975)를 쓴 것은 불과 25살 때다. 이 논문에서 그는 ‘섹스/젠더 체계’라는 복합적인 개념을 제시하며 남성 지배의 기원이 ‘여성 거래’를 통한 친족 형성에 있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사위에게 넘겨주듯 여성을 교환하며 친족 관계가 관리돼왔다는 것이다. ‘수취인 남성’의 처분에 따라야 하는 여성은 자신을 양도할 입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루빈은 성적 불평등과 여성 억압을 계급 범주로만 규명할 수 없다며 마르크스주의를 반박하고, 가부장제로 모든 성적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며 기존 페미니즘 이론에도 반기를 든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또한 성적 억압을 팔루스(페니스에 부여된 일련의 의미들) 중심으로 환원해 ‘남근 선망’을 여전히 불러일으킨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세가지 이론은 루빈의 지적 사유를 진작시킨 바탕이기도 했다. 루빈은 무엇보다 젠더나 성역할이 없어지고 강제적 이성애라는 사슬도 풀린다면 해부학적 성을 떠나 누가 누구를 사랑하며 받는 낙인, 비정상성도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성을 사유하기’(1982)는 이런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여 논란의 중심이 됐다. “성을 사유할 때가 왔다”는 선언적 문구로 출발하는 이 논문은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에서 영감받은 바 있어 ‘현대판 성의 역사’라고도 한다. 이성애 결혼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섹슈얼리티가 몽땅 일탈, 범죄, 변태 등으로 낙인찍혀온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1980년대 미국 사회는 레이건 행정부와 뉴라이트 진영이 성적 보수화를 추진하고 동성애를 악마화하며 탄압했다. 페미니스트들 또한 뉴라이트와 동맹하다시피 반포르노그래피 운동을 펼쳤다. 루빈은 포르노그래피를 비롯, 합의된 거의 모든 섹슈얼리티의 절대적 자유를 옹호했기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받았다. 1970~80년대 10년 넘게 포르노그래피 찬반 논란 등으로 날카롭게 대립한 미국의 ‘페미니즘 성 전쟁’을 가리켜 루빈은 ‘갱 전쟁’에 비유했다. 그만큼 외롭게, 투쟁적으로 맞선 것이다. 그는 페미니즘이 다양한 성적 실천을 부적절하게 다룬다고 보았다. ‘성적 변이’는 많은 차이들의 체계이므로, 남/여 또는 이성애/동성애 이분법적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그린 성 위계질서의 도표를 보면, ‘최악’에는 성적 소수자 집단의 하위문화를 형성한 복장 전환자, 트랜스섹슈얼, 페티시스트, 에스엠, 소아성애자, 성노동자가 있다. 그의 문제제기는 단일한 섹슈얼리티 기준을 따르는 것, 곧 결혼 중심의 강요된 ‘이성애 정상성’에 대한 강력한 물음으로 읽힌다. ‘최상’급에 놓인 유일한 성적 실천인 ‘축복받은 섹슈얼리티’의 성교 방식을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억압이며 폭력이라는 얘기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카타콤’에 대한 민족지학적 분석은 섹시하고 드라마틱하며 소설처럼 재미있다. 벌거벗고 노니는 게이 섹스 클럽을 다룬 이 논문을 심히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다. 그러나 루빈은 ‘저주받은 섹슈얼리티’를 가졌음에도 유쾌했던 어느 ‘부족’의 탄생부터 멸종까지 전 역사를 그들 영토 안에서 참여관찰한 단 한명의 인류학자였다. 남성 동성애자 에스엠 집단인 ‘가죽족’ 문화연구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했다.
게일 루빈은 1978년부터 ‘게이 가죽족’이라 일컫는 성적 소수자 집단의 하위문화를 연구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왕들의 계곡: 1960~1990년 샌프란시스코 가죽족’(1994)이었다. 현실문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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