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무도회에서 여성이 드레스에 장식하는 코르사주는 ‘가치’의 시각적 표지였다. 난초는 인기 있는 고가의 꽃이었다. 앨피 제공
집밖으로 나온 남녀 만남
사랑과 자본의 결합 분석
“데이트의 핵심은 과시”
사랑과 자본의 결합 분석
“데이트의 핵심은 과시”
자본주의적 연애제도
베스 베일리 지음, 백준걸 옮김
앨피·1만6000원 20세기 미국 현대사 연구자인 베스 베일리 템플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쓴 ‘데이트의 역사’다. 연애에 대한 미국의 ‘국민적’ 관습을 탐구하려는 목적 아래 중산층 백인 이성애자 커플을 중심으로 1920년부터 1965년 사이에 확산된 데이트 제도를 살폈다. 데이트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된 19세기 말, 20세기 초 생겨난 신생 문화다. 원래 남녀간의 연애는 남자가 여자의 집에 찾아가는 중산층 사교계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남자를 우아하게 집으로 초대했고, 어머니의 시선 아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춘 남녀의 만남이 무르익었던 것이다. 남녀가 집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 공적 공간으로 연애의 장소가 이동한 까닭이다. 도시 빈민가 열악한 주택에 살던 가난한 청춘 남녀 노동자들은 초대와 방문이 용이하지 않자 집 바깥의 댄스홀, 극장, 레스토랑, 영화관 같은 오락장에서 만남을 시작했다. 도시 상업적 공공장소의 하층민 여흥문화에서 ‘데이트’가 출발한 것이다. 데이트는 ‘자유’의 공간에서 ‘돈’을 쓰는 것으로 변모했다. 지은이는 데이트의 탄생이 매매춘과 연관된다고 설명한다.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내는 대신, 여자는 그 돈의 대가로 성적인 호의를 제공한다는 관념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남자는 돈을 지불하면서 남성적 권위와 성을 구매하게 되었다. ‘더치(페이) 데이트’는 남녀 모두에게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더치 데이트’는 여성이 남성 세계를 침범하고 경쟁하며 통제권에 도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2013년 조사 결과, 미국 남성의 76%는 여성이 돈을 내겠다고 했을 때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돈을 나눠 내는 것은 남성성을 공격하고 상처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런 성별에 따른 연애 관습, 결혼 담론을 퍼트리고 생산한 이들은 ‘과학’의 허울을 쓴 대학 내 전문가 집단이었다. 본격적인 분석은 여기부터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데이트는 인기 증명을 위해 벌이는 ‘경쟁 게임’으로 변모한다. 대학 캠퍼스는 치열한 경연장이었다. 남학생들의 인기는 자동차, 옷, 사교클럽 멤버십, 돈 등 물질적 표상과 연동되었고 여학생들의 인기는 남성들의 수요가 많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많은 남자들과 돌아가며 춤을 출 아찔한 인기, 죽을 만큼 힘들더라도 미소를 짓는 에티켓, 다른 꽃보다 비싼 난초꽃 코르사주를 선물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타인에게 이를 과시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중요했다고 한다. 데이트는 점점 ‘소유’와 ‘전시’를 특징으로 하는 상품으로 자리잡아갔다. <에스콰이어> 같은 남성 잡지에서 여성의 가슴 크기는 남성 지갑 두께와 함께 거론되곤 했다. 남성은 여성을 흡사 ‘전시용 동물’처럼 평가했고 1940년대 후반 남성 조언서에는 “무도회의 여왕들은 (…) 전시용 말을 사듯이 구매하는 것”이라는 훈계가 등장하기도 했다. 여성은 “액세서리” “상품”이었다. 여성들은 목 위로만 성적 접촉을 허락해야 할지, 더 농도 짙은 애무를 허용해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정숙하라는 조언이 횡행했지만 동시에 그 반대로 “우리는(남성은) 그 옛날 강건한 강간범의 후예인데 오늘날 저자세의 신랑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저서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에서 여성에게 허락된 행동 범위는 너무 좁았다. 미국 중산층의 데이트 역사를 짚은 것이니만큼 한국의 맥락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중 하나인 <연애의 시대>를 보면 양국의 ‘근대적 연애’가 서로 얼마나 다른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에바 일루즈)도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사랑의 감정이 자본주의의 경제와 어떻게 만나고 특정한 메커니즘을 형성하는지 좀더 꼼꼼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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