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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본주의 이후’ 낙관보다 진통이 먼저다

등록 2015-10-01 20:40

뉴레프트리뷰(6호)
볼프강 슈트렉·크리스토퍼 존슨 외 지음
김영아·진태원 외 옮김/길·2만5000원

곧 닥쳐올 자본주의의 결말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논문이 번역돼 나왔다. 매년 한권씩 출간하는 한국어판 <뉴레프트리뷰> 최근호 첫머리에 실린 ‘자본주의는 어떻게 종언에 이를까’에서 독일 정치경제학자 볼프강 슈트렉은 ‘자본주의 이후’를 긍정적으로 보아온 변혁론자들의 막연한 환상조차 깬다. 새로운 세상이 올지는 몰라도, 진통이 먼저라는 투다.

슈트렉은 자본주의가 대항운동의 덕을 보아왔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사망단계”에 들어선 건 대항 세력이 파괴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보면, 1945년 이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와해되고 있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 1980년대 공공부채 증가, 1990년대 민간부문 부채 상승, 2000년대 금융위기가 이어졌다. 칼 폴라니가 언급한 대로 토지·노동·화폐라는 ‘허구적 상품’의 전면적 시장화를 막았던 제도적 안전판이 약화되면서 시장 팽창은 임계점에 달했다. 불황, 과두제, 공공영역의 약탈, 부패, 규제 완화 등에 대한 해결책도 부재하며 저항을 재구성할 정치적 주체도 없다. “1930년대의 세계적 붕괴와 유사한 규모로 고통의 시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비관적 전망에 이르면 무서울 정도다.

‘노벨상이 외면한 지역과 작가들’은 날카로운 문화비평이다. <상상의 공동체>로 유명한 베네딕트 앤더슨은 동남아시아 전문가답게 이 지역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서 배제돼 있다는 점을 냉소적으로 지적한다. 열강들이 과거의 식민지 작가들을 지원하지도 않고, 인도네시아어와 말레이시아어가 친족어임에도 서로 배척해 연대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지배엘리트는 멍청한 국수주의자고, 좋은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 게 보통이며, 우수한 번역가를 교육 훈련하는 일도 안중에 없다.” 마치 한국에 대한 비판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회학자 마르코 데라모의 글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죽음의 키스”라고 비꼰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토스카나 지방의 성곽도시 산지미냐노가 “중세를 코스프레하는 영화의 세트장”이 돼버렸으며 이탈리아야말로 “유네스코의 딱지붙이기”로 가장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시와 사회 공동체 전체의 삶을 박물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에 의존하며 거주민의 삶을 박제화하려는 기획에 대한 비판이지만 토건 개발에 열 올리는 한국 사례나 정치적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활용하는 일본을 떠올리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그밖에도 이번호에는 현대 프랑스 사상 특집으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마지막 인터뷰, 장폴 사르트르의 1961년 강연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성’, 에티엔 발리바르가 쓴 추모글 ‘알튀세르와 윌름가’를 만나볼 수 있다. ‘푸틴의 세계관’, ‘이중의 부재: 실종자를 표현하는 방식’, ‘당신이 모르는 쿠바의 실상’ 등도 깊이 있고 무게감 또한 만만찮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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