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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근대 한글 활자의 원형 개발자는 서양인이었다

등록 2015-10-08 22:47

당시 동아시아 활자인쇄사에서 가장 큰 ‘성서체 1호’ 활자로 찍은 <교화황륜음>(1889). 궁체 자형의 미적완성도가 극치에 달하는 18세기 말의 정자체와 흘림체의 요소를 절충했다.  홍시 제공
당시 동아시아 활자인쇄사에서 가장 큰 ‘성서체 1호’ 활자로 찍은 <교화황륜음>(1889). 궁체 자형의 미적완성도가 극치에 달하는 18세기 말의 정자체와 흘림체의 요소를 절충했다. 홍시 제공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 사라진
한글 활자사 복원한 류현국 교수
40개국 자료 모은 실증적 연구서
한글 활자의 탄생
: 1820~1945

류현국 지음/홍시·5만원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 활자체’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학계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학술적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한글날을 맞아 발간된 <한글 활자의 탄생>은 이런 흐름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근대 한글 활자사 연구서다. 지은이 류현국 일본 쓰쿠바기술대학교 종합디자인학과 교수는 2000년 초 유럽, 미국, 일본에서 옛 아날로그 활자 서체를 원형으로 한 복고풍 디지털 서체 개발이 진행되는 데 자극받아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이 책은 류 교수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근대 한글 활자의 원형과 활자 개발의 계보를 찾아 세계 40여개국을 돌며 수집한 자료를 종합한 것이다. 국내에는 이에 대한 자료들이 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는 한글 활자사의 ‘잃어버린 고리’로 남은 기간이다.

프랑스 동양학자 로니가 만든 <한글 개요>(1864). 홍시 제공
프랑스 동양학자 로니가 만든 <한글 개요>(1864). 홍시 제공
이 공백기를 메운 사람들은 한글에 관심을 가진 유럽 동양학자, 외교관, 선교사 들이었다. 지금까지 연구를 종합하면, 근대 한글 납활자는 서양인이 처음 개발했다. 프랑스 동양학자 레옹 드 로니가 <한글 개요>(1864)라는 논문에 한글 문법을 소개하기 위해 ‘트리 라인 다이아몬드’(4.8㎜) 해서체 약 370개를 만든 것이다.

당시 서양 외교관과 선교사 들 또한 한글 연구와 활자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병인박해 이후 조선의 천주교 탄압 탓에 선교사들은 중국에 숨어 한글 성경을 번역했고, 일본에 인쇄소를 세운 뒤 활자 개발을 의뢰해 한글 성경과 교리서를 찍어냈다.

한글 가로쓰기를 처음 시도한 것은 1860년대 등장한 언어사전 <불한자전>이었다.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가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가로쓰기와 띄어쓰기의 서양 조판방식을 도입했다. 프랑스왕립인쇄국은 1868년 한글 ‘분합활자’를 처음으로 제작했다. ‘한’이라는 글자를 찍기 위해 ‘ㅎ’ ‘ㅏ’ ‘ㄴ’ 활자를 따로 만들어 조합하는 식이다. 류 교수는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하나의 활자를 하나의 문자로 보는 한자 문화권의 ‘사각활자’와 달리, 서양인들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자 각각 유닛을 따로 만들어 조합했다”며 “소수의 활자를 만들어 자유자재로 조합해 수많은 활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 매우 합리적인 한글 해석의 산물이었다”고 말했다. 한글의 과학성 덕분에 서양 알파벳의 분합 활자 시스템과 동양의 전통적 사각 활자 시스템이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지은이는 동아시아 활자인쇄사에서 당시 크기가 가장 큰 것으로 인정받는 ‘성서체 1호’ 활자(10.24㎜)의 제작 시기와 장소를 추적하는 데 힘을 쏟았다. 대형 활자 개발은 인쇄 문화의 발달과 서체의 미적 표현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데, 그동안 이에 대한 해명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성서체 1호는 ‘궁체’ 자형의 미적 완성도가 극치에 달하는 18세기 정자체와 흘림체의 요소를 절충하고 전통적인 한글 필사체의 특징을 계승해 무척 아름답다. 류 교수는 “성서체 1호 활자는 천주교 조선교구 종현성서활판소가 1889년 간행한 <교화황륜음>에서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비로소 원도 제작부터 활자 주조, 인쇄, 보급까지 전 과정이 국내에서 처음 대량생산 체제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성경은 한국 출판 인쇄사의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새로운 서체의 탄생을 알리는 <동아일보>(1933) 기사. 홍시 제공
새로운 서체의 탄생을 알리는 <동아일보>(1933) 기사. 홍시 제공
한글 서체 발전에는 신문의 구실도 컸다. 1928년 <동아일보>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활자체 공모를 하는데, 이때 이원모의 명조체가 선택되었다. 이 서체는 북한의 <로동신문>에 활용되기도 했다. <독립신문>의 활약상도 적지 않다. 경술국치 이후 중국에서 발행된 3종과 국내 한글판을 합하면 이 신문은 종류가 무려 4가지나 되었다. 식민지 시기에 자국민이 외국에서 이처럼 다양한 독립신문을 발간한 사례는 매우 희귀하고 드문 일이라고 한다.

한글 고딕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에서였다. 서구에서 첫 산세리프체(고딕체)가 1816년 비로소 등장한 데 견주면 목판 해례본은 그보다 370년이나 앞선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은 정당 홍보용 책자인 <사회주의 혁명의 건설적 방면>에서 국내 최초로 본문 인쇄용 고딕체 한글 활자를 개발했다.

앞으로 개발할 한글 디지털 신서체의 미래를 위해 지은이는 <훈민정음>을 소환한다. 언해본(1459) 목판본에 사용된 한글 해서체는 지금 서체와 비교해도 완성도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 교수는 “한글 해서체의 목판본, 목활자본, 등활자본과 궁체의 자형에는 한글 활자 개발의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점은 12년 동안 이어진 지은이의 오랜 연구가 일본 문부성의 연구비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근대 활자인쇄사에 대해 체계적이고 방대한 연구를 해왔다. 류 교수가 이번 연구에 뛰어든 것도 외국인의 한글 연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근대 한글 활자 연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이 씁쓸한 대목이다. 류 교수는 “내년에는 후속작 <한글 기계화의 시작과 종말, 그리고 부활: 1946~2000>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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