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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실수투성이, 인생이라는 서커스여

등록 2005-10-13 18:04수정 2006-02-06 17:25

서커스 사고로 다친 형, 형수 사랑한 동생
그로 인해 결혼생활에 실패한 조선족 여성
헛된 코리안 드림에 허물어진 그 연변 남자
‘밝은 무대’에서 내려와 하염없이 떠돌다
<잘 가라, 서커스>(문학동네)는 1970년대산 작가의 선두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천운영(34)씨가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앞선 두 단편집 <바늘>과 <명랑>을 통해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천씨의 첫 장편이기에 남다른 관심이 쏠렸다. 계간지 <문학동네> 2004년 여름호부터 올 여름호까지 연재되었던 작품을 작가는 꽤 오래도록 붙들고 매만진 모양이다. 작가 쪽의 부담도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소설은 중국 조선족 처녀와 한국 남자 사이의 결혼을 소재로 삼았다. 스물다섯 살 나이의 작고 가녀린 여자 ‘림해화’가 졸속 맞선을 거쳐 결혼하게 되는 ‘이인호’는 어려서 당한 사고로 정상적인 목소리를 잃고 쇳소리 같은 해독 불능의 소리를 내는 사람. 작가는 인호의 동생 ‘윤호’와 해화의 시점을 오가며 소설을 끌고간다.

인호 대신 윤호를 화자로 삼음으로써 소설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울림을 확보한다. 동생을 위해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서는 ‘서커스’를 하다가 사고를 당한 형의 존재가 동생에게는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마침내 해화에게 형을 떠넘김으로써 홀가분한 심정이 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이 등장한다. 형수가 된 해화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

“어째 이제 옴까?”(70쪽)

인호·윤호 형제와 홀어머니, 그리고 새색씨 해화가 처음으로 가족 나들이를 나간 경복궁에서 길을 잃었던 해화가 뒤늦게 나타난 윤호의 품에 안긴 채 꿈꾸듯 중얼거린 이 말은 교향악의 주제 선율처럼 소설 전편에 걸쳐 메아리친다. 해화의 이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인호가 아닌)윤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일까? 윤호는 이 말이 가져다 준 혼란과 형수를 향한 자신의 “불경한 욕망”(85쪽)에 괴로워하다가 그예 집을 나간다. 게다가 눈물 바람을 하는 해화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이는 모습을 형이 지켜보고 있었음을 알게 됨으로써 형제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과 알력의 기운조차 감돌게 된다.

그들과 그녀의 서로 다른 속사정


동일한 상황을 해화 쪽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가 길을 잃은 것은 궁궐 내 민속박물관에서 발해 공주의 무덤 모형과 마주친 일 때문이었다. 무덤 모형은 해화로 하여금 고향 마을의 발해 공주 무덤에 함께 들어갔던 남자 ‘그’를 떠오르게 한다. 발해사를 연구하던 그는 해화보다 먼저 한국으로 왔고 속초에서 노동으로 돈을 벌며 해화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서 밝힌 바 그를 견디게 해 주는 게 둘이 함께 들어갔던 발해 공주의 무덤인 것과 마찬가지로, “무덤은 나를 꿈꾸게 했다”(31쪽)고 해화는 진술하는 것. 그가 무덤을 목격하고 길을 잃는 순간 혼몽 속에서 “당신임까?”(70쪽) 부를 때 그 ‘당신’은 윤호도 인호도 아닌 ‘그’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 이제 옴까?’의 수신인 역시 그 누구도 아닌 ‘그’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 속에서 해화와 ‘그’는 나란히 한국에 와 있으면서도 결코 만나지 못한다. 해화를 대신해(?) ‘그’를 만나는 것은 윤호. 집을 나와 속초와 중국 훈춘을 오가는 ‘따이공’이라는 이름의 보따리상 노릇을 하면서였다. 물론 윤호도 ‘그’도 서로가 해화라는 여자를 알고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해화가 인호의 폭력적인 집착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뒤 우여곡절을 거쳐 최후를 맞이하는 속초에서도 해화와 ‘그’는 끝내 해후하지 못한다.

해화가 윤호 형제를 속였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에 오면서 그는 이렇게 다짐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한국으로 간다. 그의 목소리가 되고, 그의 시중을 들고, 그의 아이를 낳을 것이다. 나는 내 나그네(=남편)의 충실한 아내가 되리라. 그리고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23쪽)

발해 공주의 무덤과 ‘그’가 해화의 꿈이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꿈이 아닌 현실을 사는 존재로서 해화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나그네’ 인호와 더불어 꾸리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어느 정도는 ‘코리안 드림’과 결부되어 있음이다.

여기서 두 가지 꿈 사이의 대립이 발생한다. 발해 무덤의 꿈과 코리안 드림. 코리안 드림이 돈으로 대표되는 현실적·세속적 욕망과 관련된다면 발해 무덤의 꿈은 그에 대비되는, 본원적·인간적 가치를 구현하는 상징물이라 할 만하다. 좀 더 부연하자면, 코리안 드림이 국경과 국적이라는 냉혹한 현실적 구분에 기반하는 반면, 발해 무덤의 꿈은 동일한 민족적 뿌리라는 정서적 공통성에 의지한다고 볼 수 있다.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한국에)왔”(220쪽)던 ‘그’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 아니면 한갓 저렴한 노동력임을 깨닫고 일본행을 결심한다거나, 해화의 코리안 드림이 약물중독으로 파탄에 이르는 모습은 발해 무덤의 꿈이 지닌 현실적 취약성을 가차없이 보여준다.

발해 무덤의 꿈과 코리안 드림

해화와 윤호를 향한 인호의 태도는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해화와 윤호가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일이 인호의 불안과 의심에 불을 댕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인호는 일종의 ‘분리불안’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 그의 사고부터가 동생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환심과 사랑을 확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던 끝에 생긴 것이었다. 해화의 가출 가능성을 우려해 자는 동안 그 손과 발을 묶어 놓는 비정상적인 행동은 그런 이상 심리의 극단적 표출로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윤호와 함께 따이공이 되어 배를 탔다가 바다로 뛰어든다. 그에 앞서 같은 배를 탔던 서커스단원들은 공연에서 실수를 저지른 말을 산 채로 바다에 수장시키는 의식을 치르는데, 인호의 자살은 인생이라는 서커스에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응징이라 볼 수 있겠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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