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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회학은 ‘지금’ ‘여기’ 삶의 문제를 묻는 것

등록 2015-10-15 20:59

파이프를 입에 문 모습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바우만. 1925년생인 그는 사회학의 윤리적 책무를 굳게 믿으며 사회학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낯선 것을 익숙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다. <한겨레> 자료사진
파이프를 입에 문 모습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바우만. 1925년생인 그는 사회학의 윤리적 책무를 굳게 믿으며 사회학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낯선 것을 익숙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다. <한겨레> 자료사진
‘살아있는 전설’ 바우만 대담집
권력에 팔려가는 사회학 비판
“사회학의 소명은 방향 제공”
사회학의 쓸모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노명우 옮김
서해문집·1만5000원

사회학은 삶 자체가 악몽인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는가? 무력감을 양산하는 세상, 약자들을 ‘인간 쓰레기화’하는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회학자는 지식인인가 아닌가? 그렇다고 ‘돈 안 되는 사회학’은 배우고 익혀 대체 어디에 쓰는 것일까?

<사회학의 쓸모>(What Use is Sociology?)는 영국 리즈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대담집이다. 2012~2013년 ‘후배’ 사회학자들인 덴마크 올보르대학 미켈 야콥슨 교수와 영국 헐대학 키스 테스터 교수가 여러 차례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925년 폴란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바우만은 젊은 시절 “인간의 비참한 리얼리티”를 탐구하기 위해서 사회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바르샤바대학에서 사회학을 하다가 1968년 공산당의 반유대 캠페인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이 책의 옮긴이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바우만은 연령과 이력을 고려할 때 사회학 역사의 부침을 설명할 수 있는, 생존하는 유일한 사회학자”라고 말했다. ‘후학’들이 그 앞에서 순진무구한 대학 새내기처럼 “사회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대담집은 사회학 개론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읽기에 녹록지 않다. 그러나 이 두껍지 않은 책은 사회학의 역사뿐 아니라 ‘바우만 사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 길잡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노학자는 70년 자신의 경험을 바탕 삼아 과거 사회학의 성공과 실패,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문학적 암시를 자주 쓰는 이유, 심지어 사회학자가 왜 텔레비전 시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도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후학들에게 지침을 주듯 사회학자의 소명에 대해 그는 거듭 말한다. 40여년 전, 1972년 리즈대학 사회학과 교수 취임연설에서부터 바우만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학의 임무를 강조하며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한다. “시대에 만연해 있는 우상의 면전에서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지배적인 흐름을 거슬러야 한다.” 대담자들이 여전히 이런 견해를 고수하고 있느냐고 묻자, 바우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이 입장을 유지해야 할 더 많은 이유를 찾아냈다”고 답한다. 그동안 세계는 “강박적이고 강제적인, 멈출 수 없는 변동”을 겪으며 현대화했고, 현대화는 ‘잉여 인간’을 만들었으며, 사회적 긴장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눈을 돌릴 때, 권력에 팔려갈 때 사회학은 쓸모를 잃어버린다고 그는 지적한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 <쓰레기가 되는 삶들> 같은 저술에서 보듯 이미 오래전 사회학적인 용어 사용을 그만두었다. 전문용어 사용은 사회학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의사소통을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사회학이 중요한 것이 되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그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사회학자들이 정책 입안자에게 학문적 통찰을 팔며 권력자의 연구기금을 기다리는 동안 사회학은 자성의 기회를 잃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사회학의 소명은 (…) 사회적으로 발생한 삶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혼자 찾아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지친 개인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사회학은 자유의 과학이자 해방의 학문이 될 수 있는가? 바우만은 우리가 해방이란 의제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외려 현대의 공포와 위협 앞에 “비록 실현되지 못할 사유”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지금’ ‘여기’ 천국이 될 수도 있었던 세계가 왜 내일 지옥이 될 수 있는지” 이유를 찾아내는 질문과 사유를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사유는 인간의 행위 가운데 가장 고독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유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이 금지된다면 자유도 끝나지만, 질문할 수 있다면 희망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는 한 자유롭고,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으면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바우만은 사회학의 소명은 변화하는 세계에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여기’ 개입하며 ‘당대’의 경험과 이야기를 다룰 때 사회학은 쓸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권위를 정당화할 수도, 관계를 끊을 수도, 제도정치에 대안을 제공할 수도, 타자를 책임질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학은 “본질적으로 정치 행위일 수밖에 없다”. 단, 사회학이 위험을 경고하고 삶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각자에게 도움을 줄지언정 사람들을 선동해야 한다고는 그는 말하지 않는다. 사회학자로서 바우만 자신도 애초에 누가 받을지 모르지만 희망을 담아 ‘병 속의 편지’를 쓰는 운명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수취인 불명’의 희망 메시지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흡수되길 바라면서.

<세상물정의 사회학>(2013)을 써 호평받았던 옮긴이 노명우 교수는 “바우만은 사회학자가 선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처지’를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현실에 순응하고 있다면 그건 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이며, 자기 처지를 알게 되면 저항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옮긴이가 후기에 쓴 다음의 말은 아마도 바우만이 말했던 ‘사회학의 쓸모’에 대한 종합적인 답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만 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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