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티브이(TV)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방송 프로그램은 독서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본질적으로 티브이는 출판 시장과 독서계를 위축시켰지만 거꾸로 책읽기를 독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1984년도 1월1일 뉴욕과 파리를 연결한 백남준의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생중계가 남긴 강한 인상은 곧바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렸다.
80년대 들어서 티브이와 문학작품은 직접적으로 만난다. 예술성 높은 문학작품을 드라마로 각색 제작하여, 드라마는 질적 수준을 높이고 문학작품은 대중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문학과 미디어가 상호 보완을 이루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방송>(KBS)의 ‘TV문학관’과 <문화방송>(MBC)의 ‘베스트(셀러)극장’ 등의 단막극이다. ‘TV문학관’은 1980년 12월18일 장미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동리의 <을화>를 제1회로 방영한 이래 1987년 10월3일까지 총 277편이 방송되었다. ‘TV문학관’은 이후 ‘드라마 초대석’, ‘TV문예극장’, ‘신TV문학관’, ‘HDTV문학관’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2000년대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문학과 티브이의 만남은 ‘대하드라마’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된 케이비에스 대하드라마 시리즈 15편 중에서 10편이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유주현의 <파천무>, 이태원의 <개국>, 김교식의 <새벽>, 선우휘의 <노다지>, 윌리엄 아서 노블의 <이화>, 박경리의 <토지>, 한무숙의 <역사는 흐른다> 등이 당시 ‘대하드라마’로 각색된 원작소설들이다. 티브이는 좋은 각색과 훌륭한 연출을 통한 양질의 드라마를 통해서 시청자의 독서열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문학사상>(1984년 2월호)이 시청자 2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6%가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티브이를 시청했으며, 그중 28%가 ‘원작을 찾아 읽었다’고 답했다. 이들이 원작을 찾아 읽게 된 동기는 원작을 어떻게 각색했는가 궁금해서(48%), 티브이극만으로는 감동이 미흡해서(27%),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25%)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티브이가 일상생활에서 독서를 위축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지하철에서 종이신문과 독서 풍경을 지워버린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에 비한다면 반(反)독서의 주범이라는 평판은 억울할 듯하다.
정종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