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각/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하루 전기료만 238만원 드는
청계천은 복원된 게 아니라
새롭게 개발됐을 뿐이다
말끝마다 ‘환경’으로 속이는
이명박식 개발 불쾌하다
청계천은 복원된 게 아니라
새롭게 개발됐을 뿐이다
말끝마다 ‘환경’으로 속이는
이명박식 개발 불쾌하다
녹색 에세이/달려라 냇물아
청계천 하늘이 열리고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먼저 이는 생각은 정치인들은 날을 참 잘 잡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인’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에 누구나 볼 수 있게 물이 흐르도록 작심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인 뒤에 잡은 잔칫날은 단군 할아버지 하늘을 여신 지 4337주년이 되기 이틀 전이었고, 이어진 연휴에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다시 흐르는 청계천’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가까이 흐르는 물과 도심의 열린 녹지공간에 그 동안 얼마나 목말랐으면 백만여 시민이 인산인해를 이루다 난간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까지 생겼을까. 대권출정식을 방불할, 이른바 ‘새물맞이’ 행사에만 들인 돈이 10억원이었다고 하는데, ‘청계천 효과’를 위한 그런 과감한 투자와 잘 잡은 잔칫날의 흥분으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시장은 1위와의 격차를 좁히고야 말았다. 그거야 앞날이 너무 많이 남아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청계천 개발로 인한 긍정적인 측면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복개 구조물과 고가도로를 걷어내고 옹벽 사이 시멘트 물길 안으로 6㎞에 달하는 물이 흐르자 곤충과 물고기가 돌아왔고, 바람길도 되살아났고, 바람길이 살아나니 주변 온도도 낮아지고, 대기질을 향상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비인간적인 도시환경에서 질식할 것처럼 살던 시민들의 마음은 커다란 위로를 받게 되고, 당연한 일이지만 서울시 홍보자료처럼 땅값도 오르면서 업종 고급화와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해졌을 것이다. 그뿐인가. 미흡하기는 하지만 서울 600년 역사도 일부 되찾게 되고, 도심의 문화가 긍정적으로 달라지리라 예측된다. 그래서인지 “세금은 모름지기 이렇게 쓰는 것이다”는 시민들의 뜨거운 환호와 “어쨌거나 시원해서 좋다”는 청계천 열기가 한참은 더 갈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대규모 토목공사가 서울시의 최초 공약처럼 진짜 ‘청계천의 생태적 복원’일까. 대부분의 언론에서 다루듯이 ‘진정한 청계천의 부활’일까. 대다수 긍정적인 국민정서와는 달리 이번 토목공사에 ‘복원’이라는 과장된 수사가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일에는 말을 다루는 환경판 사람으로서 딴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시장이 2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개발론자’로 널리 유포된 그의 정체성에 맞게 후다닥 해치운 청계천 개발은 생태계 복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 네티즌은 “만약 이번 역사(役事)를 ‘생태적 복원’이라 한다면 놀라 자빠진 사람을 싣기 위해 앰블런스가 달려올 것이다”라고 했다. 복원되었다고 일컫는 ‘이명박의 청계천’은 한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3층 구조로 이뤄져 있다. 차수막(遮水膜)이 쳐진 하도(河道) 밑의 건천(乾川)인 진짜 청계천, 이번에 끌어들인 한강과 지하수가 상류로 역류되는 반생태적 물 공급관, 그리고 마침내 시민들이 보고 느끼는 6㎞ 시멘트 수로에 담긴 인공하천이 그 3층 구조다. 끌어들인 물은 하루에 12만t,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150마력짜리 모터펌프와 대형 변압기는 연중 가동되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자그마치 연간 8억7천만원, 하루 238만원이다. 연간 17억1445만원에 이르는 물값 시비는 대청댐을 쓰는 청주시가 댐법에 따라 물값을 내는 것과는 달리 ‘생태계 복원과 친수환경 조성을 위한 비영리사업인 점을 감안해’ 수자원공사가 포기했다. 형평성을 잃은 수자원공사는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효과로 혹시 대권을 잡기 전에 공연히 찍히기 싫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청난 액수의 물값, 전기료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명박의 청계천’은 돈의 힘으로 흐르는 ‘거대한 인공하천’, 달리 말해 급조된 ‘거대한 시멘트 연못’이라는 평가절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야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수되고 소독된 죽은 물 또한 자연하천의 ‘청계(淸溪)’와는 거리가 멀다. 뉴욕시도 정전이 되고, 우리 사회 또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사회일진대, 만약 정전이라도 되면 청계천 물은 그 순간 흐르기를 멎을 것이다.
물론 그가 강조하듯 “나보다 잘 할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보다 더 열심히 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는 추진력과 과단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추진력과 과단성, 그리고 ‘열심’은 양민을 학살해 정권을 잡거나 나랏돈을 꼬불쳐놓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기업가들도 대부분 갖추고 있는 흔한 자질이 아닐 수 없다. 주목할 덕목은 ‘열심’이 아니라 ‘열심의 내용과 방향’이다. 인기가 하늘을 치솟은 이시장에게서 받는 가장 곤혹스러운 불쾌감은 ‘개발’과 ‘생태적 가치’를 혼동하는 그의 ‘의도적 무지’와 ‘친환경·생태’라는 고통 없이 사용할 수 없는 말을 아무 때나 동원하는 대중선동과 교묘한 자기기만이다. 그래서 ‘조명래·홍성태·우석훈’ 같은 가슴이 뜨거운 학자들은 차라리 “개발부터 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던 ‘박정희·정주영’같은 1세대 개발론자들보다 말끝마다 환경.생태를 약재의 감초처럼 붙여 세상을 속이고 국토파괴를 정당화하는 ‘이명박식 신개발주의’에 더 심각한 우려와 격한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계천 잔치가 끝나기 바쁘게 경부운하를 건설하고, 15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를 임기내에 허락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그의 정체성은 영락없는 태생적 개발론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말도 많고 돈도 많이 드는 인공하천 청계천에 시민들이 보낸 뜨거운 반응에서 설명이 좀 필요한 희망도 발견할 수 있다. 삭막한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생업에 쫓기며 견디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내장된 자연에 대한 말릴 수 없는 원초적 갈급이 그것이다. 청계천에 물이 흐른다고 요란을 떠는데도 만약 시민들이 시큰둥한 반응이라면 그땐 어이할 것인가. 이 새로운 발견은 과외의 소득이지만, 청계천 개발이라는 반생태적 토목공사 이면에는 외면해서는 안 되는 그늘도 있다. 두 명의 이웃이 목숨을 끊는 것을 목도했던 1000여명의 청계천 일대 노점상들은 지금 동대문운동장 트랙에 임시천막을 치고 잔치 후에 곧 닥칠지도 모를 공권력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다. 청계천은 복원된 게 아니라 ‘새롭게’ 개발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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