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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쓰디쓴 환상이라도 진실을 알고싶다”

등록 2015-10-22 20:54수정 2015-10-23 11:15

탐사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신을 찾아서>에서 그는 10대 시절 겪은 신비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그간 인류가 배제해온 미지의 영역에 질문을 던진다. 부키 제공
탐사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신을 찾아서>에서 그는 10대 시절 겪은 신비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그간 인류가 배제해온 미지의 영역에 질문을 던진다. 부키 제공
‘배신 3부작’ 지은이의 깜짝 변신
10대부터 이어진 신비체험 고백
진리 추구 향한 또 하나의 체험기
신을 찾아서:
어느 무신론자의 진리를 향한 여정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1만4800원

제목부터 배신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노동의 배신> <긍정의 배신> <희망의 배신>을 읽고 현실에 눈뜬 독자들은 어쩌고 이제 와 신을 찾는 것인지. 그러나 그가 썼다면, 단순한 ‘신앙 고백’은 아닐 터.

<신을 찾아서>의 지은이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1941년 미국에서 태어난 탐사작가이자 사회운동가다. 대표작인 <노동의 배신>(Nickel and Dimed, 2001)을 쓰기 위해 그는 3년간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위장 취업’했다. 노동 위계 맨 밑바닥에서 중년 여성노동자로 일하며 자본주의의 이면을 낱낱이 고발한 덕에 이 책은 미국 600여개 대학 필독서로 지정되었고 ‘생활 임금’ 운동에도 불을 붙였다.

나머지 책들의 위엄 또한 ‘바닥’을 치밀하게 탐사한 결과였다. <긍정의 배신>에서는 그 자신 암에 걸린 여성 환자로서 치료 문화에 만연한 긍정 메시지 전략, 대형교회와 자기계발서의 문제들을 분석했다. 그는 맹렬한 운동가, 선동가였다. “우리가 직면한 위협은 현실적이며, 자기몰입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없앨 수 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늙고 병약해져 정신이 흐려진 나머지 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인가?

이 책은 회고록 형태를 띤다. 2001년 유방암에 걸린 그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14살이던 1956년부터 시작하는 일기를 살펴본다. 그 일기에는 “너무도 기묘하고 엄청난 사건”이 쓰여 있었다. ‘신비체험’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는 “합리주의자, 무신론자, 훈련된 과학자”인 본인이 생각해도 “신과 요정의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분석을 미뤄두었지만, 끝내 쓰고야 만다. 16살의 자신이 과거에서 보내는 편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이후 너는 무엇을 배웠니?” 지은이는 어물쩍 피하지 않고 자기 삶의 엄중한 관찰자가 되어 체험담을 써내려간다.

그의 혈관에는 노동계급, 반골의 피가 흘렀다. 할아버지는 철도 노동자, 아버지는 광부 출신, 어머니는 청소부였다. 친증조할머니는 종부성사를 하러 온 신부 앞에서 십자가를 패대기친 무신론자였고, 부모 또한 비슷했다. 어린 시절은 위태위태했다. 특히 어머니에게는 거의 학대를 당했다. 지식인이었지만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의 “편애”와 결국 세번째 자살시도에서 뜻을 이뤘던 어머니의 “암흑 에너지” 사이를 탁구공처럼 오갔다. 분노와 경멸에 차 있던 부모 아래였지만 “왜?”라는 질문만큼은 철저히 배웠다. 부모는 책을 가까이하며 논쟁을 즐겼기 때문이다. 명석하나 유약한 부모 밑에서 그는 일찍이 우주적 지식 탐색에 몰두한다.

14살 무렵, 그는 ‘해리 현상’이라고 할 만한 일을 겪게 된다. 나무를 보다가 갑자기 세상이 지워지며 모든 단어와 의미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평생 반복되었다. 하지만 “신비주의 냄새를 풍기는 건 딱 질색”하는 자칭 경험론자 아닌가. 남들이라면 성전으로 달려갔을 테지만 그는 유일신 종교와 화해할 수 없었다.

1965년 이후, 에런라이크는 반전운동을 벌이며 운동가로 첫발을 내딛는다. 사회운동, 원고 집필, 출산, 육아, 심지어 페미니스트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른바 ‘내조’까지 병행했다. 두번의 이혼, 중년 이후 맞닥뜨린 우울증과 유방암 투병은 “아이 때의 탐색”으로 자신을 돌려놓았다. 고생물학, 고고학, 심리학 책을 보며 공부했고 우울증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50대가 되어 그는 자연 속에 푹 잠겨 동물, 미풍, 빛 한줄기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애니미즘, ‘신들’, 정령들, 외계인들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은이는 고양감, 충만감 등 ‘신비체험’을 조사하는 편이 외면하는 것보다 바른길이라고 여긴다. “생물체” “(인간)존재” 바깥의 잠긴 문을 여는 것이, “야생의 타자”에 대해 질문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세포생물학 박사 출신인 그는 훈련된 과학자로서 신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단, 인간이 모르는 것에 대한 탐사만큼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성과 합리성을 중심으로 인간종이 몇세기 동안 쌓아올린 지식의 한계, 전능한 유일신 이외의 신성과 정령을 모조리 폐기해온 세계관의 해악을 비판하는 것이다. “회의를 품는 게 맞다. 내가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비록 추악하고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진실을 알고 싶”다며 그는 거침없이 미궁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이 세상의 모든 혼란과 수수께끼를 응축시켜 감지 가능한 타자 내지 타자들로 요약하는 것, 그것이 내 정신의 목표인 것처럼 보이며, (…) 내 정신에 본래 부여된 기능인 것 같다. 당신의 정신 또한 분명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을 찾아서>는 또 하나의 탐사보고서다. 그는 여전히 냉철한 과학자이고, 이 책은 ‘배신 3부작’의 외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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