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도기 인간들
1980년대와 90년대는 지나치게 선명하게 대비된다. 80년대가 뜨거운 불의 상징이고 어떤 상처이자 ‘훈장’인 딱 그만큼, 90년대는 차갑다. ‘쿨’(cool)하고 냉소적이다. 상처를 상처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언제 ‘90년대’가 시작된 것인지 헷갈린다. 나는 80년대보다 90년대에 더 오래 대학을 다녔고 20대의 5분의 4를 90년대에 보냈다. 그럼에도 ‘486세대’라 지칭되는 세대이고 스스로도 대충은 그렇게 생각한다. ‘과도기’를 산 것이다. 그러니 90년대 초반 세대도 비슷하다 보인다. 겉으론 매우 쿨한 그들도 기실 상처투성이 과도기 인간들일 것이다.
근래 대중문화계에서는 <응답하라 1994> <토토가> 따위가 큰 인기를 끌면서 1990년대를 재현하고 회고한다는 것이 이슈가 되었다. 또한 문학장을 논란으로 몰아넣은 ‘신경숙 표절 사태’와 그 후과로 제기된 논제도 여기에 닿아 있다. 어느 면에서 199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해온 신경숙 문학, 그리고 창비·문학동네로 대표되는 출판자본 또는 비평가 그룹이 주도해온 한국 문학장의 핵심 이데올로기와 제도문학 전반이 재평가될 기회를 맞은 것이다.
이처럼 80년대와 90년대를 각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8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이행과 연속성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어렵고 중요하다. 그것은 운동정치와 이념지형의 근본적 변화 외에도, 여성문학의 대두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흥기 등 ‘포스트 민족문학’ 시대의 복잡한 문제들을 포함한다. 그 모두의 ‘배후’에는 ‘87년체제’의 문화적·시민적 자유주의 그리고 그 토대인 신자유주의 문제가 있다.
■ 변한 것
아무리 변호하려 해도 1989~91년의 세계사적 변화는 2차대전 종전 이래 이어져온 체제경쟁(흔히 ‘냉전’이라 지칭)에서 미국과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승리’를 거둔 사건이었음에 분명했다. 이 ‘승리’는 물론 ‘정치적’인 것이며 ‘현상적’인 것이었다. 사회주의 블록이 몰락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죽은 개’처럼 간주되기 시작할 때 새로운 혼란도 시작됐다. 미국 군수자본은 하이에나처럼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내어 곧 걸프전을 시작했고, ‘사회주의 없는’ 세계 곳곳에서는 ‘새로운 야만’이 개시되어 보스니아와 르완다 등에서 수십만의 인민이 학살당했다.
한반도의 사정도 나름 복잡했다. 1991년 5월투쟁의 패배,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 등 ‘민주화’ ‘자유화’가 진행되었다. 대략 5~7%의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1996년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자, 한국이 제3세계 국가가 아니라 ‘선진국’일 거라는 자신감+착각이 거품이 되어 부풀어올랐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와 담론 지형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80년대 사람들’은 얼이 빠진 듯 방황하며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1992)나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가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 김일성과 ‘소련’ 없는 1990년대 중반의 북한에는 자연재해까지 겹쳐 최소 수십만의 인민이 굶어죽었다.
사회주의권 몰락…한국 OECD 가입
세계화·자유화 남한땅 휘감은 듯
광고·마케팅 힘이 만든 밀리언셀러
사회과학 출판사 망하거나 변신
저항·운동으로서 독서 함께 사멸
여성작가들 새삼 문화의 중심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관변 독서운동
권력 간섭과 탄압 출판계 길들이기
출판인 구속·‘금서’ 압수 잇따라
■ 독서문화의 변화
무엇이 90년대의 상징일까? 삐삐·시티폰·피시(PC)·유선방송 같은 새로운 미디어테크놀로지와 대중문화 외에도 세계화·자유화가 남한 땅을 온통 휘감는 듯했다. 이는 독서문화에서도 큰 변화를 야기했다.
첫째, 독서시장은 9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확장됐고 자본의 장악력이 커졌다. 생산·유통의 모든 면에서 출판 자본의 ‘집적·집중화’가 가속되었다. 이를테면 서울 광화문통에 영풍문고가 새로 개점해서 성업할 정도로 독자층이 늘고 구매력이 커졌으나, 중소 서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전엔 거의 없던 밀리언셀러가 80년대 말부터 자주 나타났으나 광고와 마케팅의 힘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냈다. 물가 상승에 따라 책값도 상대적으로 많이 오르고, 저작권조약 가입 뒤 외국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에도 꽤 높은 자본의 진입장벽이 생겼다.
출판계의 판도도 많이 바뀌었다. 80년대의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망하거나 변신했다. 아무래도 창비의 변화가 그중 가장 극적인 것이었다. ‘운동’의 구심이던 창비는 90년대부터 ‘자본’으로 비약했다. <소설 동의보감>(1990)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993)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같은 ‘메가셀러’가 잇따라 나왔다. 이는 창비 변화의 ‘유물론적’ 맥락일 것이다.
90년대의 심화된 ‘자본주의화’는 독서 풍토에도 반영되어 재테크 책을 위시한 ‘실용서’가 새로 독서 시장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재테크’란 말 자체가 당시의 신조어였다.
둘째, 거센 ‘세계화’와 ‘정보화’의 파도가 밀려왔다. 외국 라이선스 잡지가 몰려들고 피시통신 공간이 새로 베스트셀러를 산출하는 새 매개가 되었다. ‘전자출판’과 세계 표준의 아이에스비엔(ISBN)도 이때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중산층 가정에 피시가 보급되자 컴퓨터 서적도 많이 읽혔다.
셋째, ‘운동으로서의 출판’과 저항의 독서문화는 함께 사멸해갔다. <응답하라 1994>에서도 외면한 1990년대의 비극은 바로 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마치 아닌 듯 없는 듯 이야기하지만 90년대에도 ‘운동’의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학생운동·노동운동과 그 문화는 각각 적어도 연세대 사태(1996년)와 1997~98년의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가 오기까지 융성(?)했다. 그러나 먼저 대학부터 깨져나갔다. 이를테면 1993년 5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범식에는 무려 8만여명의 학생이 모였으나, 바로 이해부터 ‘신세대’ 담론이 본격화했고 대학가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교수와 학교당국의 힘은 날로 커졌고 학생 자치·정치조직의 힘은 점점 약해졌다. 민중적이고 저항적이었던 대학문화는 독자성을 잃고 상업적 대중문화에 종속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세미나’들이 있었지만 대학생들의 독서문화는 ‘연성화’되기 시작했다.
넷째, 여성문학의 흥기.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여성주의와 여성문학의 전통은 얕지 않다. 그것은 시발점에서부터 한국 문학의 중축이었다. 여성 의식의 개화와 여성의 앎-주체로의 형성은 현대문학의 형성 자체와 동궤에 놓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문학과 여성 독자들은 곁다리 취급을 당했으며, 여성 문인은 남성중심적인 문학판의 비주류이거나 성차별의 대상이었다. 지식인 공론장에서도 여성 지식인은 자리가 없었다. <사상계>나 <창비> <문지> 등에서도 소수의 시인·소설가를 제외하고 여성 필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가 되자 달라졌다. 여성 작가·지식인·비평가들이 대거 등장해서 문학장과 담론장을 바꿔놓았다. 여성 독자도 물론 더 중요해졌다.
특히 1993년은 신경숙의 해였다.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1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신경숙 현상’을 불러왔다. 어떻게 신경숙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처음 신경숙을 상찬하고 나선 것은 백낙청이 아니었다. <문예중앙> 1993년 봄호는 갑년에 가까운 ‘대가’ 비평가 김윤식과 근 한 세대가 차이 나는 ‘여성 신예’ 신경숙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 대담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 김치수·김원일·최원식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한국일보 문학상을 주었다. 염무웅·서영채 등은 신경숙을 김승옥과 비교하며 띄웠고,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동시에 ‘신경숙 현상’을 특필했다. 왜 그리 거의 모든 남자-중년-비평가들이 신경숙을 그토록 반가워하고 좋아했을까? 더 풀어야 할 의문이지만 ‘80년대식’ 노동·민중문학을 재빨리 극복 또는 청산하려 했던 그들에게 신경숙 소설의 문체와 내면성은 어떤 새로움의 진앙지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1994년은 공지영의 해였다. 그해 문학·출판계에서 “특이하고도 놀라운 현상”은 그녀의 소설 세편이 동시에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진입한 것이었다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가 1994년 12월 현재 각각 36만, 20만, 10만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공지영 현상’은 80년대적인 것의 썰물과 90년대적인 것의 밀물의 교차지점에서 발생한 것이다. 즉 당시 제도문학계에서는 80년대(민중·민족문학)의 추방 또는 애도(이른바 후일담 문학)와 여성문학의 새 시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특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새로운 여성문학·여성주의의 시대가 개막되는 신호탄처럼 간주되었다.
이렇게 ‘여성’은 새삼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구미의 문화적 조류나 서적 따위를 지칭하는 문맥 속에서만 사용되다가, 1992~93년께 본격적으로 우리 현실을 지시하며 ‘여성주의’라는 단어와 함께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잇따라 나타난 공선옥·은희경·김형경들도 문학판의 핵심이 될 터였다.
■ 변하지 않은 것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거의 안 변한 것도 있었으니, 일단 두 가지만 적어둔다. 하나, 관변·민간의 독서운동은 여전했다. 가을의 ‘독서주간’은 물론, 국민독서경진대회도 계속되었다. 특히 1993년은 ‘책의 해’로 정해져 대대적인 행사가 벌어졌다. “책을 펴자 미래를 열자”가 중심 구호였다. 이해는 1950년대부터 계속 이어져온 관변(+민간) 독서운동의 최절정기가 아닐까 싶다. 출판계는 초유의 독서진흥법 제정도 추진했다. 그러자 기업에서의 소위 ‘독서 경영’도 확산되었다.
둘째, 출판에 대한 공안권력의 간섭과 탄압은 70~80년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니, 1989년 이후 5공 때보다 두 배나 많은 88명의 출판인들이 감옥에 갔다. 잇따른 공안정국과 3당 합당 이후의 정치의 보수화 과정에서 검찰이 심심하면 출판계를 괘씸죄와 길들이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990년 1월과 7월엔 각각 북한 관련 서적을 출판한 출판사의 대표가, 6월엔 실천문학사 송기원 대표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1991년 3~4월에는 녹두·노동문학사 등의 출판인 5명과 전북대 앞 새날서점 주인이 구속됐다. 1994년 4월에도 일터·일빛 등의 출판사 대표가 구속됐는데, 심지어 부산지검 공안부는 굳이 부산대·동아대 등 대학가 서점들을 ‘털어’ 사회과학 서적 300여권을 압수했다.
냉전이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됐다는 ‘월드뉴스’가 대한민국 검찰에는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런 듯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