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권의 공안권력은 물론, ‘국가보안’뿐 아니라 ‘성(性) 보안’도 수호하고 다스리고 싶어했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 때문에 구속된 것은 대통령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92년 10월29일이었다. 책을 만든 청하출판사 대표 장석주와 함께였다.
사회 전체에 뜨거운 논란이 일었고 일시적으로 <사라>가 불티나게 팔렸다. 거의 모든 지식인·예술가들이 마 교수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나섰지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10개 종교 단체는 ‘음란조장출판물 대책협의회’를 긴급 구성하고 검찰의 구속 조치를 환영하는 성명을 냈다. 원래 윤동주 전공자인 마 교수는 1989년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출간한 이래 유명 작가가 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두 달 감옥생활을 한 뒤 풀려났다. 하지만 1995년 최종심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연세대에서 해직까지 당했다.
장정일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였다. 소설과 시는 물론 1994년에 출간된 <장정일의 독서일기>(연재는 1993년)도 새로운 서평 문화를 열며 독서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한창 명성을 날리던 장정일이 법정구속된 것은 1997년이었다. 역시 ‘음란물’을 제작·반포했다는 죄목을 뒤집어썼는데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김영사)가 ‘남녀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등 음란하다’는 ‘법’의 판단이 있었다. 출판사의 상무가 구속되고 난 뒤였다.
물론 탄압의 대상이 된 건 유명한 두 작가만이 아니었다. 1993년 7월의 일제단속에선 ‘음란한’ 소설·만화·비디오테이프 등을 만들어 팔아온 ‘업자’ 13명이 서울지검에 잡혀갔다. 1996년 <아마티스타> 등 에로틱 소설을 펴낸 열음사가 출판사 등록취소 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자유·민주의 1990년대’에 생긴 일로 믿기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남성-엘리트-반공-공안권력은 무척 경건하고 ‘도덕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국민이라는 노예’들을 몸이나 머리나 너무 ‘풀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가진 권력을 꼭 ‘노출’하여 옥죄려 한다.
천정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