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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억을 잃고 나는 쓰네

등록 2015-11-12 21:19

잠깐독서
키브라, 기억의 원점
이치은 지음/알렙·1만3000원

‘나’는 한낮에 깨어났더니 모든 걸 송두리째 잊어버렸다. 앞부분이 찢겨나간 일기장과 네 장의 신분증이 놓여 있다. 신분증의 주인들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자신이 연쇄살인범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율한다. 나는 사건을 추적하면서 일기장에 겪은 일들과 추리를 꼼꼼하게 써나간다. 알고 보니 나는 ‘키브라(무슬림이 예배 때 향하는 곳을 알려주는 표시) 호텔’ 최고급 방에 묵는 거액의 자산가라는 점은 약간의 행운이다.

<키브라, 기억의 원점>은 추리소설의 구성 속에 기억과 소유의 문제를 다뤘다. 나는 처음엔 내가 살인자일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갈수록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더욱 초조해진다. 나의 기억을 조작하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되고 정체를 쫓아가지만, 최후의 격돌은 성취 아닌 반전을 낳는다. 뭔가 멋진 소설을 썼지만, 그게 정말 내가 쓴 내 것일까라는 이른바 ‘표절’의 문제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작가가 설정한 틀을 좇느라 현실적 개연성에선 허점을 드러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닌 이상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돼 있었지만 그 뒤 벌어진 일들은 참으로 그럴 법했던 카프카의 고전에는 당연히 비할 바 아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개연성의 함정을 무시하고 이건 소설이니까 하고 읽어가노라면, 종종 발랄한 언어의 재미와 만난다. “전화번호부처럼 오래된 잠” 같은 것들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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