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인생출발점’을 물려받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은 부와 사회적·문화적 자본의 승계를 풍자한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출발부터 다른 ‘신계급사회’
능력 따른 보상은 신화일 뿐
조세정책과 정치 변화 강조
능력 따른 보상은 신화일 뿐
조세정책과 정치 변화 강조
스티븐 J. 맥나미,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사이·1만5500원 ‘노오오오력 하면 된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보상을 달리 하는 ‘능력주의’는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거룩한 교리였다. 그러나 ‘금수저’ 물고 태어난 성골과 ‘흙수저’ 문 평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의 최근 분석을 보면, 한국의 경우 전체 자산에서 부모한테서 받은 상속·증여 비중이 1980년대에 27%였지만 2000년대엔 42%로 껑충 뛰었다. (11월18일치 <한겨레> 1면) <능력주의는 허구다>는 21세기의 ‘능력주의’가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따져본 책이다. 출발 지점이 다른 경쟁, 릴레이 경주를 하면서 주자들의 거리가 차츰 더 멀어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미국 사회학자인 지은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 능력주의가 사회 시스템의 근간이라고 믿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실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사회에서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 진짜 성공을 낳는 건 ‘비능력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요인에는 △부모의 배경 △학교와 교육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부의 상속 △특권 세습 △차별과 특혜 등이 있다. 21세기에 상속주의는 능력주의를 이긴다. 사회제도 속에는 공공연한 차별적 관행이 도사리고 있으며, 계층 이동도 막혀 있다. 자수성가형 사업가는 이제 거의 없다. “정작 그 (비능력적 요인의) 수혜자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이 거듭 밝히는 바다. ‘세습 자본주의’(토마 피케티)는 심화된다. <포브스>의 2011년 자료를 보면, 미국 최고부자 140명 중 6명이 월마트를 세운 샘 월튼의 상속자들이었다. 그들의 순자산 930억 달러는 하위 41.5% 가계의 전체 부와 맞먹었다. 미국 상위 1%가 소유한 부와 중간값(가장 많은 부를 가진 이부터 가장 적은 부를 가진 이까지 일렬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값)의 비율은 1962년 125대 1이었지만 2009년 225대 1로 늘어났다. 42년 동안 미국의 불평등은 21.5% 증가했다. 여성, 유색인종, 소외계층의 피해는 더 크다. 학교 또한 “사회적 계층을 재생산하는 매개체”(부르디외)다. 1920년부터 2000년까지 예일대 1학년생 중 가족을 동문으로 둔 이는 20%에 달했다. 미국 대학의 경우 동문 자녀 특례입학제도 있다. 특권층은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 자녀의 높은 학업성취도, 다양한 스펙, 훌륭한 외모를 위해 바삐 움직인다. 인맥, 학맥,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과 스타일, 매너, 라이프스타일, 교육 등의 ‘문화적 자본’은 남몰래 은밀하게 상속한다. 이는 모두 막대한 ‘세습 자본’의 한 형태다. 이런 무형의 자본은 상속되지만 ‘개인의 능력’으로 위장된다. 교양과 안목을 키우지 못한 벼락부자들은 경제적 자본인 ‘올드 머니’를 갖췄지만 문화적 자본인 ‘뉴 머니’가 없어 계층 이동을 쉽게 완성할 수 없다. 차별적 특혜와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이다. 지은이들은 능력주의의 신화를 깬다. “인생에 (…) 상속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개인의 능력이 미치는 영향은 그 다음이다.” 부자를 칭송해서도, 가난한 이들을 비난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출발선이 다른 세상에서 사회적·문화적 자본은 차별적으로 분배되고, 상속받은 부는 정치권력으로 바뀐다. ‘계급 전쟁’이 부른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줄이려면 강력한 조세정책, 부와 소득 격차를 줄이는 세수 지출 프로그램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복지제도와 누진세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덜하고 사회적 이동성도 높기 때문이다. 읽을수록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떠오르지만 이 책은 그 이전인 2009년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됐다. ‘세습 자본주의’의 사회학 버전이랄까. 수치 인용이나 설명이 경제학 책처럼 섬세하지는 않지만, 무형의 세습 자본이 삶의 기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본 점은 현실을 더욱 정교하게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암울하나, 수긍이 간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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