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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화인류학자의 경제 ‘과학’ 비판

등록 2015-11-26 20:23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

질베르 리스트 지음·최세진 옮김
봄날의책/1만5000원
   

노벨 경제학상의 원래 이름은 노벨 ‘경제과학’상(prize in economic sciences)이다. 정작 물리학상에도, 화학상에도 붙지 않는 ‘과학’이란 영예로운 권위를 경제학상만이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공인된’ 과학인 것처럼 보인다.

기왕에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썼던 질베르 리스트는 ‘환상’ 시리즈의 두번째 타깃을 ‘경제과학’으로 잡았다. 더 정확히는 과학일 수 없는 경제학이 과학인양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 유명한 애덤 스미스부터 데이비드 리카도, 장 바티스트 세이는 물론 그들에 반기를 들었던 칼 마르크스까지 경제학의 웃대에 해당하는 이들은 유럽 극서지역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뉴턴역학을 비롯한 계몽주의의 유산을 공유했던 이들이 주요 저작을 내놓은 것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이다. 그들은 “눈앞에 있던 것들만을 관찰해서 자신들의 ‘과학’을 세웠다.”

질베르 리스트. 사진 봄날의책 제공
질베르 리스트. 사진 봄날의책 제공
그런 시·공간적, 사상적 ‘제약’을 피해갈 수 없었던 이들의 경제학은 일련의 가정을 전제로 삼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개인, 즉 계산할 줄 아는 개인이다. 그는 또한 시종일관 무한한 욕구를 가진 이기적 소비자로서 희소한 자원을 처리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추구한다. 각 개인은 완전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에서 교환을 통해 자신의 이기심을 실현하는 존재다. 개인들의 총합으로서 세상과 역사는 진보한다. 심지어 그런 진보를 가져올 경제학의 법칙은 “철의 필연성”(마르크스)으로 관철된다.

그런데, 대체 현실에 그런 개인이나 시장, 혹은 경제학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저자는 경제학의 요새에 파열구를 내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집요하게 이 질문을 반복한다. 가령 이기심의 원리에서 예외일 수 없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선물은 왜 하는가. 모든 사회에서 ‘여전히’ 선물과 답례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행위를 결정하는 이기심의 원리가 교환의 유일무이한 이유는 아니라는 반증 아닌가. 그가 보기에 효용·교환·희소성·시장·경쟁·성장 따위 개념이 떠받치는 경제학의 “개인 모형은 매우 특수한 역사적 환경에서만 가능한 존재”다. 그 모형 속 개인에겐 삶의 온기가 없다. 그저 연구 편의를 위한 허구적인 가정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사회 전체를 상징하는 ‘대표적 개인’이라는 허구를 포기하지 않”고, “시장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보편적으로 타당한 교환 형태인 양 믿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효용의 극대화 말고는 어떤 공통점도 없는 개인들의 집합일 뿐이다. 오로지 이익이 되니 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한다고 가르치는 셈이다. 사회적 유대의 가능성은 아예 배제되고 있다. 가설에서 출발해 표준 이론으로 자리잡은 이 전제와 가정들은 경제학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하다. 이 가설을 받아들여야만 경제학의 구성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은 신앙의 지위와 종교의 아우라를 얻었다.

경제학의 폐해는 책속의 주장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언제나 무한한 욕구를 지닌 이기적 개인, 항상 희소한 자원, 끊임없는 성장과 진보라는 전제는 결국 무한경쟁과 사회적 불평등, 환경파괴, 자원 약탈 따위 현실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동원되곤 한다. 경제학자들이 유능한 것도 아니다. <거대한 전환>을 쓴 칼 폴라니는 1944년 “자동으로 조절되는 시장이라는 관념에는 순전한 유토피아가 내포되어 있다”고 썼다. 그로부터 64년 뒤 세계 금융시장은 다시금 자동 조절 기능을 상실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주류 경제학이 잘못 들어선 막다른 길을 완벽하게 예증했”지만, 그많은 경제학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그런 사태를 진지하게 예견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경제학은 여전히 각광받고 있다.

대학에서 국제 문화학과 사회인류학을 가르쳤던 이 노학자의 생각은 “세상을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보자”는 제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학제간 협력 강화, 사회적 유대 확장에 바탕을 둔 경제학 패러다임의 재설계다. 새로운 경제학은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지구생태학을 거쳐 사회인류학에 이르는 수많은 지식”을 토대로 현존 경제학의 “패러다임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회운동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저자 스스로 썼듯 이 책은 지금의 경제학을 전복하기 위한 안티 경제학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의 목표는 표준 경제 ‘과학’이 우리를 끌고 들어가고 있는 막다른 길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썩 참신하지는 않다. 99%는 주류 경제학 비판이다. 의욕은 창대하나 대안은 미약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 이유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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