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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는 자연이 벌이는 만찬의 일부

등록 2015-11-26 21:12

생명에서 생명으로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김명남 옮김
궁리·1만8000원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는 종종 지혜로운 부족장이나 선지식들의 입으로 전해진 바 있다. 과학적 입증과는 별개로 인류의 지혜를 통괄하고 있는 큰 스승들은 이를 혜안으로 보았을 것이다.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자연작가’로 일컫는 미국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 버몬트대학 생물학부 명예교수는 <생명에서 생명으로>에서 이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한다.

어느 날 심각한 병에 걸린 친구의 편지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죽음을 앞둔 친구가 자신의 시신을 큰까마귀들의 밥으로 내줄 수 있겠냐고 제안해왔던 것이다. 동물이 먹다 남은 친구의 뼈와 살점이 숲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을 차마 감당할 수 없어 그 부탁은 들어주지 못했지만, 대신 동식물의 ‘죽음 이후’를 들여다본다. 생명·순환·재생에 대한 탐사였다.

죽음 직후는 아름답지 않다. 일단 부패할 때 나오는 화학물질 에탄티올(에틸메르캅탄)은 “세상에서 존재하는 물질 중 냄새가 가장 고약하다”(<기네스 세계 기록>). 동식물들은 냄새로 알고 사체를 재활용한다. 지은이는 차에 치여 죽은 쥐, 너구리, 회색큰다람쥐 등을 자신이 사는 캠프에 내놓고 ‘자연의 장의사’들을 기다렸다. 송장벌레, 큰까마귀, 칠면조독수리, 금파리, 딱정벌레 같은 수많은 동물들이 오갔다.

인간 또한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삽시간에 분해하고 해치우는 “궁극의 청소동물”이다. 고기를 먹고 석탄을 캐고 석유를 뽑아낸다. 그러나 인간이 ‘장의사 동물’의 자리를 대체해 야생 생태계는 위협을 받았다. 동식물의 서식지를 줄이고, 늘 땅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졌던 사체까지 남김없이 먹어 없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멸종을 일으키는 죄인이다.”

인간이 썩은 나무를 베어내고 젊고 싱싱한 나무를 심어 ‘지구의 허파’를 되살렸다며 우쭐대는 일은 부끄럽다. 죽은 나무는 숲의 순환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질소를 배출해 식물이 단백질을 만들도록 돕는다. 이것이 먹이연쇄로 전달되지 않으면 동물도 살 수가 없다. 자연의 방식은 인간의 힘으로 개선하는 것이 애초 불가능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물속도 마찬가지. 거대한 고래가 죽은 뒤 심해에 가라앉아 재순환되는 아름다운 과정은 이 책의 백미다.

커다란 칼깃을 나부끼며 흔들흔들 내려오는 큰까마귀보다 인간이 자연의 순환을 위해 더 잘할 수 있는 게 과연 뭘까? 아리송하다. 다만 지은이가 확신하는 것은 “인간이 물리적 순환뿐 아니라 정신적·영적 영역에서도 순환한다”는 점이다. 자연과 우리의 관계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며 우리는 그저 자연이 벌이는 만찬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구 생태계의 일부라는 비유는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죽은 뒤 자신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을까? “사람 중에 받을 이가 없다면, 내 심장을 큰까마귀에게 주어도 좋을 것이다. 녀석들도 내게 많은 것을 주었으니까.” 출간 당시 지은이는 72살. 허투루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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