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씨. 사진 서울시 제공
근현대사 인물 조명한 ‘그와 나 사이를 걷다’ 개정판…매월 답사모임도
서울 중랑구와 구리시 경계에 자리한 망우리 묘지는 서울 둘레길 2코스에 속한다. 기품있는 노송의 정취와 한강이 눈에 들어오는 조망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낸다. 일제가 1933년 경성부립묘지로 조성한 이곳은 73년 공동묘지로서 수명을 마쳤고, 97~98년 공원화 사업을 통해 주민 친화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4.7㎞ 산책순환로인 ‘사색의 길’도 생겼다. 길을 따라 돌면 박인환(시인)·이중섭(화가)·최서해(소설가)·조봉암(독립운동가·정치인)·한용운(시인)·방정환(아동문학가) 등 근대사의 걸출한 인물들 묘지를 볼 수 있다.
수필가 김영식씨는 최근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호메로스)을 펴냈다. 6년 전 망우리 묘지에 안치된 역사인물을 발굴·조명해 호평을 받았던 저서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인물사>의 개정판이다. 새로 발굴하거나 자료 부족으로 다루지 못했던 10여명을 추가했다. 반민특위 제1조사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병홍, 일장기 말소사건 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설의식, 한국 민속학의 원조로 불리는 송석하 등의 삶과 죽음이 더해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선릉역 부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올해 들어 매달 한차례 묘지 답사 모임을 이끌고,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 강의도 수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주한 ‘망우리공원의 가치제고’ 및 ‘인문학길 조성’ 용역사업에도 참여했다. 내년 가을쯤 마무리될 이 사업은 역사인물의 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세우고 상세한 지도도 만드는 작업이다. 지도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
김씨는 초판에서 도산 안창호가 38년 별세 때 자신의 애제자 유상규가 있는 망우리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사실을 잡지 <삼천리>에서 찾아내 공개했다. 유지에 따라 망우리에 있던 도산의 묘가 73년 강남 도산공원으로 옮겨가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던 그는 도산기념관에서 보관중인 석비(이광수 글, 김기승 글씨)라도 다시 망우리 묘터로 옮길 것을 서울시에 청원해 뜻을 이뤘다. “내년 3월10일 도산 기일 이전에 석비를 다시 세우면서 묘역도 새로 정비합니다.”
그는 서민의 묘비도 시대를 읽는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박은하 자는 곳// 님이 가시면서 부탁한 그대로 어린것들을 나 혼자서라도 잘 키우리이다 님이여 우리 다시 만나는 영원한 나라에 빛나는 나라에 함께 만나리 다시 만나리. 갈린 몸 정훈” 아내와 사별한 남편이 세운 비석이다. 지난해 답사 때는 보이지 않아 시에 발굴을 요청했다고 한다.
“김구 주석의 최측근이었던 박찬익의 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요. 93년 국립묘지로 이장했고, 망우리 묘터엔 시인 조지훈이 글을 써 64년 세운 비석만 남아 있죠.” 임정에서 법무부장과 국무위원을 지낸 박찬익은 임종 때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겠다’며 효창묘원에 모시겠다는 동지들의 청을 거절했다. 독립유공자가 서민의 묘원인 망우리에 묻힌 이유다. “비문 가운데 ‘깊이 감추고 팔지 않음이여 지사의 뜻이로다’는 대목이 있어요. 지사는 자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답사 때 선생의 이런 뜻을 꼭 이야기합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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