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공부 중독
엄기호·하지현 지음/위고·1만5000원 모두가 성공을 위해 내달리는 시대다. 대다수에게 성공을 위한 도구는, 바로 공부다. 초등학생은 좋은 중학교에 가기 위해, 중학생은 특목고를 가기 위해,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이런 공부는 하는 게 아니라 (요약정리돼 있거나 형광펜으로 강조 표시된 대목을) 구경하는 것이다. ‘공부 하는’이 아니라 ‘공부 구경하는’ 것에 모두가 매몰돼 있다는 얘기다. <공부 중독>은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의사 하지현이 ‘공부가 뭐길래?’라는 화두를 놓고 나눈 이야기를 담은 대담집이다. 인문사회학적 통찰이나 경험 등에 바탕한 공부 세태에 대한 진단부터 날카롭다. 시간이 드는 토론이나 원리에 대한 탐구는 약하고 요약정리에는 강하다. 머리는 똑똑한데 사교·의사소통·공감 등 ‘인간관계의 근육’은 쇠퇴한다. 남들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 서툴고 짧은 기간에 예측된 정답을 찾아 내놓는 것에만 최적화된다. 공부중이라는 이유로 현장 진출이 유예되면서 머릿속으로 ‘(공부를 많이 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만능감을 느끼지만, 현실에서 ‘한사람 몫’을 못하는 불일치가 발생한다. 심지어 연애하는 방법도 학원에서의 교육과 공부를 통해 배워야 하고, 군대 가는 나이까지 ‘대학 1학년 마치고’로 획일화된 세태란다. 하지만 모두가 공부에 목숨 거는 시스템에서 공부로 성공할 수 있는 이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육 중독의 문제는 비단 그 세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전체의 삶을 왜곡시키는 블랙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시스템 변화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사람들의 생각이 안 바뀌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 잘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깬 이탈자들이 한명씩 한명씩 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단다. 가능성이 고만고만한 자식 공부에 올인하기보다, 자기 삶의 안전판부터 확실히 하고 20대 중반께 자식이 뭔가 하고 싶어할 때 지원해줄 수 있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깨달음을 퍼뜨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엄기호·하지현 지음/위고·1만5000원 모두가 성공을 위해 내달리는 시대다. 대다수에게 성공을 위한 도구는, 바로 공부다. 초등학생은 좋은 중학교에 가기 위해, 중학생은 특목고를 가기 위해,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이런 공부는 하는 게 아니라 (요약정리돼 있거나 형광펜으로 강조 표시된 대목을) 구경하는 것이다. ‘공부 하는’이 아니라 ‘공부 구경하는’ 것에 모두가 매몰돼 있다는 얘기다. <공부 중독>은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의사 하지현이 ‘공부가 뭐길래?’라는 화두를 놓고 나눈 이야기를 담은 대담집이다. 인문사회학적 통찰이나 경험 등에 바탕한 공부 세태에 대한 진단부터 날카롭다. 시간이 드는 토론이나 원리에 대한 탐구는 약하고 요약정리에는 강하다. 머리는 똑똑한데 사교·의사소통·공감 등 ‘인간관계의 근육’은 쇠퇴한다. 남들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 서툴고 짧은 기간에 예측된 정답을 찾아 내놓는 것에만 최적화된다. 공부중이라는 이유로 현장 진출이 유예되면서 머릿속으로 ‘(공부를 많이 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만능감을 느끼지만, 현실에서 ‘한사람 몫’을 못하는 불일치가 발생한다. 심지어 연애하는 방법도 학원에서의 교육과 공부를 통해 배워야 하고, 군대 가는 나이까지 ‘대학 1학년 마치고’로 획일화된 세태란다. 하지만 모두가 공부에 목숨 거는 시스템에서 공부로 성공할 수 있는 이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육 중독의 문제는 비단 그 세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구성원 전체의 삶을 왜곡시키는 블랙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시스템 변화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사람들의 생각이 안 바뀌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 잘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깬 이탈자들이 한명씩 한명씩 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단다. 가능성이 고만고만한 자식 공부에 올인하기보다, 자기 삶의 안전판부터 확실히 하고 20대 중반께 자식이 뭔가 하고 싶어할 때 지원해줄 수 있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깨달음을 퍼뜨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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