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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의 숭배 부추긴 기독교의 ‘원죄’

등록 2015-12-10 20:24

영국의 경제사학자 R.H.토니
영국의 경제사학자 R.H.토니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R.H.토니 지음, 고세훈 옮김
한길사·2만6000원

영국의 경제사학자인 R.H.토니(1880~1962)의 저서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 140번.

두번째 국역인 이 책의 이름이 그다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면, 막스 베버의 저작이 주는 기시감 때문일 것이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베버는 16~17세기 서유럽에서 이뤄진 근대자본주의의 발흥에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탐구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청교도주의의 세속적 금욕주의와 그에 동반한 예정설, 직업적 소명 의식 따위가 자본주의 정신을 탄생시킨 원천이었다고 설명한다.

베버의 사후인 1926년에 펴낸 <기독교와…>에서 토니는 베버에게 학문적으로 “큰 빚을 졌음”(초판 서문)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베버가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단순하고 근본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심리적 조건들의 문제다.”

토니는 베버의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뒤집어 그 시대의 경제적 팽창이 영국의 종교사상에 미친 영향을 쫓는다. 그의 눈에 비친 당대 자본주의는 ‘비기독교적’(un-Christian)이라기보다 ‘반기독교적’(anti-Christian)이다. 기독교에는 교부들, 스콜라 철학자들, 종교개혁 신학자들이 세운 도덕적·사회적 철학이 있다. 사회적 문제에 윤리적 해답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흥 과정에서 기독교는 고래의 전통 윤리와 멀어지는 한편, 새롭게 직면한 문제들을 풀어갈 현대화나 지적 모색에도 실패했다. 더욱이 17세기 이후 후기 청교도주의는, 베버의 주장과 달리, “인간의 본래적인 약함을 오히려 덕목이라고 과장함으로써” 인간의 탐욕과 같은 반사회성을 부추겼다. 기독교의 자리는 부의 숭배라는 새로운 우상이 차지했다.

“기독교적 인간 개념의 당연한 귀결은 강력한 평등의식이다. (…) 모든 사람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사회제도가 만드는 모든 우발적인 특혜와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기독교인의 양심을 충족시키는 목표로 설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토니는 경제적 삶의 도덕화, 자본주의 문명의 재정신화를 위한 전통적 기독교 사회윤리의 ‘새로운’ 복원을 주장한다.

오랜 기간 런던경제대학(LSE) 교수를 지낸 토니는 젊은 시절 빈민가인 런던 이스트엔드의 사회복지관에서 도시빈곤과 노동운동을 경험했다. 그때 형성된 문제의식은 평생에 걸쳐 노동당 활동으로 이어졌는데, 기독교인이자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개인의 삶에서 자신이 말한 바를 구현한” 보기 드문 지식인으로 지금도 평가받는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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