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작가의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 <미생>의 한 장면. 인턴사원 장그래는 “우리 애”라는 상사의 말을 듣고 눈물을 보이지만, 오늘날 디지털 모바일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없다.
세계 최고의 장시간 노동 사회
개인·가족에 미치는 영향 분석
개인·가족에 미치는 영향 분석
견디고 있는가:
삶을 소진시키는 시간의 문제들
노동시간센터 기획, 김영선·강수돌 외 지음
코난북스·1만5000원 퇴근길. “파일 보내! 지금 빨리!” 팀장님의 다급한 문자. 남은 배터리 1%.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 (어느 통신사 광고) “저희 마트는 2교대인데요. (…) 집에 들어가면 새벽 한 시, 씻고 잠자리에 누우면 두 시죠.” (대형 마트 노동자)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는 ‘과로사회’의 노동 상황을 설명하며 ‘시간’이 가진 정치적 문제를 드러낸다. 전주희 수유너머N연구원, 강수돌 고려대(세종) 경영학부 교수를 비롯해 사회학·의학·경영학·경제학·여성학·철학을 전공한 10명이 각각 부채, 모바일 기술, 청소년 노동, 시간제 노동 문제, 야간노동, 과로사, 가족문제 등을 맡아 다뤘다. ‘근면 신화’는 나태하면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광범위한 협박이다. 2000년 전, 그리스 노예 출신 이야기꾼 이솝의 ‘개미와 베짱이’부터 전승된 강력한 신화. 강수돌 교수는 이 계보를 추적하며 한국에서 ‘근면’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조화돼 왔는지 돌이켜봤다. 동양에서 성실하라는 담론은 일본 메이지 유신(1868) 시절 형성되었다. 당시 일본 근대화의 기본 가치는 부국강병과 근면 성실이었다. 개화사상가인 유길준, 윤치호, 안창호, 최남선도 이에 영향을 받아 개인의 성실·근면·자조를 강조했다. 1970년대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이나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의 첫 문장을 통해 국민들은 자유를 발산하는 근대화된 개인이 아니라, 국가 발전의 도구가 되기를 요구받았다. ‘수출역군’ ‘산업전사’ ‘새마을 아가씨’ 같은 호명은 개인의 욕구를 차단하는 고도의 억압전략이고 문화정치였지만 지위가 올라가는 듯한 근사한 집단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지난 6월 강 교수가 번역한 <중독조직>(앤 윌슨 섀프·다이앤 패설)을 연상케 한다. 사회 전체가 일 중독자처럼 움직이는 ‘중독사회’에서는 리더의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구성원들이 이를 심지어 보호하는 ‘동반 중독’ 증상을 보인다. ‘우리의 근대적 시간’은 이렇게 가랑비에 옷젖듯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1976년 해태제과 여공들은 “하루 열두시간만 일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탄원했다. 1980년대 철강이나 석유화학 산업의 노동자들은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한달에 한번 쉬지도 못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가족주의’ 담론 앞에 마땅히 참고 견뎌야 할 고통이 되었다. (김보성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근대화 이래 한국의 가정은 남성 노동자의 ‘회사인간적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아내는 바쁜 남편을 대신해 출산, 양육, 가사노동, 집안의 대소사를 혼자 책임졌다. 이제 부부는 학교 서열화로 인한 자녀의 교육비, 뛰는 전세에 맞춰 주거비를 마련하려고 정신 없이 함께 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노동 시간만 문제일까. 오늘날 금융화된 사회에서 대학생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부채를 얻고, 부채를 갚는 데 다시 미래의 시간을 저당잡힌다.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은 2005년 18만명에서 2012년 181만명으로 10배가 되었다. “대출 사업이 사회복지로 둔갑한 셈”(전주희 수유너머N 연구원)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출퇴근 시간을 함께하는 ‘직장 동료’가 없을 수도 있다. 만화 <미생>의 인턴사원 장그래는 회식 뒤 우연히 만난 옆팀 과장에게 “너희 애 때문에 우리 애만 혼났잖아!”라는 오 과장의 말을 듣고 눈물을 보인다. 하지만 같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디지털 모바일 노동자에게 ‘우리’는 없다. 퀵서비스 기사, 방문판매원, 보험설계사, 배송기사, 전문직 프리랜서 모두 독특한 ‘시간의 세계’를 산다. 출퇴근이라기보다 콜 신호에 따라 이동하며 노동시간은 ‘탈공간화’ 한다. 업무 전에 차 한잔, 점심 먹고 커피 마시기, 끝나고 함께 소주 한잔 하는 일도 없고 ‘우리’나 ‘동료’도 발생하지 않는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얼마나 더 일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성실해야 하는 걸까. 미국의 대선 후보로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는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왜 이것을 견디고 있는가?”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시를 읽고 비평하는, 온전한 삶의 시간을 확보하는 시작은 ‘의문’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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