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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디지털 기술이 우리 뇌를 뒤흔들고 있다

등록 2015-12-17 20:40수정 2015-12-18 09:59

사람 뇌세포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은 1000분의 1초동안 지속되는 미세한 전기 파형에서 시작된다. 뇌 속 신경섬유의 가닥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뇌 영상기법(DSI)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사람 뇌세포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은 1000분의 1초동안 지속되는 미세한 전기 파형에서 시작된다. 뇌 속 신경섬유의 가닥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뇌 영상기법(DSI)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게임·SNS·검색 몰입할수록
더 많은 흥분물질 분비돼
도박이나 폭식 때 뇌와 비슷
인정욕구·보상심리 충족
 
대면과 공감능력 줄어들며
생활양식·문화도 중대 변화
‘이대로 좋은가’ 성찰 제안
마인드 체인지
수전 그린필드 지음, 이한음 옮김
북라이프·2만2000원

#1. 2010년 이맘때, 서울 잠원동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 새벽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20대 청년이 뒤쫓아온 같은 또래 남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범인 박아무개씨는 밤새 칼싸움을 벌이는 온라인 게임을 하다 ‘밖에 나가 처음 만나는 사람을 죽이겠다’며 흉기를 들고나와 일을 저질렀다.

컴퓨터 화면에서 가상 흉기를 쥐고 있던 박씨가 현실에서 진짜 흉기를 휘두른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 업체들 주장대로 그 사건은 가상과 현실을 혼동한 한 개인의 일탈에 불과한 것일까?

#2.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평일 하루 평균 3시간 사용한다. 휴일도 별 차이가 없다. 19~29살 중엔 하루 5시간 이상 사용하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다. 스마트폰으로는 통화(72.7%)보다 카카오톡·페이스북 등 이른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이용과 이메일 송수신을 더 많이 하는 것(74.9%)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은 인터넷 검색(59.7%), 게임 등 여가활용(24.7%) 순이었다. 사람들은 평균 7개 전화번호를 기억했는데, 흥미롭게도 20대는 6개에 그친 반면 40~50대는 8개를 암기했다.(<중앙선데이> 2015년 11월8일)

사람들은 왜 전화기를 들고도 통화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더 많이 하는가? 기억력에서 앞설 20대가 왜 나이 든 40~50대보다 기억하는 전화번호 수가 더 적을까?

수전 그린필드
수전 그린필드
<마인드 체인지>는 이런 의문들에 답을 찾는 최신의, 괄목할 만한 시도다. 저자 수전 그린필드(65)는 뇌신경학 분야의 이름난 학자답게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처럼 묵시록적인 미래를 그려내지도,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디지털 낙관주의를 설파하지도 않는다. 그의 문제의식은 심리학 책을 연상케 하는 표제보다 부제에 더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그 메커니즘과 결과를 알기 위해 그는 스티븐 호킹류의 상상력 대신 지구 곳곳에서 이뤄진 다양하고 방대한 실험·조사 결과를 섭렵한다.

성인 기준 1.4㎏ 안팎인 사람의 뇌는 “한 손으로 감싸쥘 수 있는, 볼품없고 흐물흐물한 크림색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외부 자극은 이곳을 거쳐 처리된다. 뇌는 마음의 실체이기도 하다. 마음은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 즉 “뉴런들이 장기적으로 일반화한 연결망”이다. 각 개인의 뇌는 경험이 다른 만큼 ‘개인화’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뇌는 평생에 걸쳐 환경과 경험이라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여 스스로를 개조한다”(샤론 베글리, <유연한 뇌>)는 점이다.

실제로 복잡한 대도시 런던의 택시 기사는 뇌의 작업영역(해마)이 같은 연령대 사람들보다 더 크다. 왼쪽 팔과 손을 더 많이 쓰는 현악기 연주자들은 촉각과 관련된 뇌의 겉질 영역이 일반인보다 더 커진다. 뇌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발달한다. 습득한 학습의 양에 비례해서다. 뇌는 빈 공간을 그냥 두지 않는다. “뉴런은 노는 꼴을 참지 못한다.” 상식으로 통용되는, 사람은 뇌를 10%밖에 쓰지 못한다는 말은 “지극히 헛소리일 뿐”이다. 뇌 영상을 보면 심한 손상을 입은 환자를 빼고는 완전히 비활성 상태로 침묵하고 있는 영역이 전무하다.

그러면 에스엔에스를 사용하고, 게임을 즐기고, 구글에서 서핑하는 인류사상 유례 없는 경험을 하는 동안 우리 뇌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뇌신경에 흥분을 전달하는 물질인 도파민이 ‘배쪽줄무늬체’라는 이름의 “뇌줄기에서 분수처럼” 분비돼 뇌 전체로 퍼져나간다. 도파민 분비의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은 친구가 ‘좋아요’를 눌러줄 때, 게임에서 휘두른 칼날이 적의 폐부를 깊숙이 관통할 때, 구글 검색에서 찾고자 했던 정보를 드디어 발견해냈을 때 도파민은 ‘왈칵’ 분비된다. 그 결과는 뉴런의 반응성 변화다. 특히 성인 뇌의 33%를 차지하면서 정서와 집중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마앞엽(전전두엽) 뉴런들의 활성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이때 영상장치로 들여다본 이마앞엽은 미성숙한 아이, 무모한 도박꾼, 산만한 정신분열병 환자, 폭식하는 비만인의 상태와 흡사해진다. “‘의식’은 있지만 ‘마음’을 잃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생활양식과 문화까지 바꿔놓고 있다. 초연결 상태로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사이버 자아’와 오프라인에서 살아가는 ‘참 자아’의 분열은 정체성의 혼란을 부른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대면 상호작용이 줄면서 공감능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도덕적 일탈과 사이버 괴롭힘, 연관된 범죄도 늘었다. 가상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맥락과 의미를 잃고 분절된 채로 검색된 지식들이 진짜 지식의 자리를 ‘찬탈’해가고 있다. 요컨대 디지털 기술은 인정받고자 하고, 무리에 끼고 싶어 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의 세 가지 기본 욕구를 “더 온전하고 더 쉽게 조합해 충족시켜” 주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김택진과 김정주,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어떻게 갑부가 됐는지는 이 대목에서 자명해진다.

저자는 끈덕지게 ‘이대로 좋은가’를 묻고 있지만, ‘정답’은 없다. “마음 변화에는 기후 변화와 같은 해답이 없다.” 그러나 ‘선제적 사고’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이 몰고오는 뇌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너무 늦기 전에 성찰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책의 말미에 자라나는 세대와 그 부모들을 위한 화두 하나를 슬며시 던지고 있다.

“(디지털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캘리포니아 로스앨토스 지역의 부모들 사이에서 (모든 디지털 기기의 교내 사용을 금지하고 신체활동과 창의적인 체험 교육을 중시하는) 발도르프 학교의 인기가 높다는 <뉴욕 타임스> 기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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