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서 숨진 단원고 학생들의 생일에 시인들이 쓴 ‘생일시’를 모은 책 <엄마. 나야.>가 출간되었다. 사진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었던 지난달 12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수만큼 250개 가방을 모아 놓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선우 김민정 박성우 등
시인 34명이 학생들 생일시 써
치유공간 ‘이웃’ 프로젝트 책으로
시인 34명이 학생들 생일시 써
치유공간 ‘이웃’ 프로젝트 책으로
곽수인 외 지음/난다·5500원 푸릇한 목숨들이 시커먼 바닷물 아래 수장된 뒤에도 죽은 아이의 생일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마땅히 축하와 감사의 자리여야 할 생일잔치는 애통한 그리움이 지배하는 눈물 잔치가 되고, 부모와 친구들은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이라도 죽은 아이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저승과 이승의 거리가 엄연하거늘 죽은 자의 목소리를 산 자가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 신화 속 헤르메스라도 불러와야 가능할 이 지난한 과업을 위해 시인들이 나섰다. 시인들이 죽은 아이가 되어 생일잔치에 모인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전하기로 한 것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인 34명이 쓴 ‘생일시’ 프로젝트는 이렇게 생겨났다. “‘저 정슬인데요,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은 아무리 제가 먼 길을 떠나도/ 언제나 되돌아와서 들려주고 싶은 말,/ 이 말은 아무리 제가 돌아오지 못해도/ 종이배에라도 실어서 들려주고 싶은 말.” 박정슬 학생의 목소리로 허수경 시인이 쓴 ‘‘저 정슬인데요,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에서 정슬이는 이모와 할머니·할아버지, 엄마에게 차례로 살가운 인사를 건넨 다음 친구들에게 말한다. “손 꼭 잡고/ 가자./ 당당하게./ 우리는 잃은 것이 있으니/ 이제 지켜야 할 것도 있다고 말하자./ 당당하게, 슬픔을 삼키며.” 이 시에서 보듯 생일시는 슬픔보다는 위로와 격려, 다짐의 용도로 쓰고 읽힌다. 세월호 참사 뒤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해 유가족을 돕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과 심리기획가 이명수씨 부부가 숨진 아이들의 생일에 맞추어 시 한 편씩을 시인에게 청탁하고 유족과 친구들이 모인 생일잔치에서 모두 함께 낭독하는 방식으로 헌정된다. 시인들은 사전에 유족·친지들이 숨진 학생에 대해 쓴 글과 사진 등 자료를 받아 검토하고 최대한 아이의 목소리에 가까운 시를 쓰려 노력했다. 안중근 학생의 생일시 ‘아빠 엄마, 저 중근이에요’를 쓰면서 이 프로젝트의 문을 연 김선우 시인은 “세월호의 고통에 동참하고 해원할 방법을 어떤 식으로든 찾아야 했기에 청탁이 왔을 때 무조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시가 무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과 회의가 많아지는 시대에 나뿐만 아니라 동참한 시인들 모두 시인으로서 자기 갱신을 겪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름도 비슷한 박성호 학생의 생일시를 쓴 박성우 시인도 “평소 안 마시던 술을 마셔야 했을 정도로 아프고 힘들게 썼다”며 “그렇지만 시를 쓰고 난 뒤 성호 어머니와 여러번 문자를 주고받으며 성호를 대신해 위로해 드리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제훈 학생의 생일시를 쓰고 이번 시집을 책으로 내기도 한 김민정 시인도 “시를 쓴 뒤 제훈이 엄마가 전화해서 ‘우리 제훈이 정말 잘 있어요?’라고 물으셔서 ‘그럼요, 완전 잘 있어요. 환해요!’라고 말씀드렸다”며 “그 전화 통화 뒤 어머니가 기운을 내서 전국을 다니며 봉사를 하시는 등 아주 좋아지셨다고 들었고 나 역시 매우 행복했다”고 말했다.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유예은 학생의 목소리로 진은영 시인이 쓴 ‘그날 이후’에서) <엄마. 나야.>에는 정끝별·김소연·박연준·임경섭 시인 등이 참여했다. 표지 그림 ‘봄소풍’의 김선두 화백과 디자이너, 외주 편집자, 인쇄소까지 두루 재능 기부를 했으며 인세 수익은 모두 다음 생일시집을 내는 데 쓰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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