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는 수도사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93년 그린 ‘마라의 죽음’. 창비 제공
집으로 보는 세계사의 명장면
교과서에 없는 촘촘한 이야기
교과서에 없는 촘촘한 이야기
이영숙 지음/창비·1만1000원 ‘의식주의 세계사’ 삼부작 완결판이 나왔다. <식탁 위의 세계사>(2012), <옷장 속의 세계사>(2013)로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쉬운 역사서를 선보여온 지은이 이영숙 작가가 이번에는 집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지붕 밑의 세계사>는 친구들에게 말 걸듯이 다정한 어투로 서재, 욕실, 방, 부엌 등 집에 얽힌 인류의 역사를 훑어나간다. 우선 제목처럼 ‘지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여기서는 ‘돔’이 주인공이다. 기원전 27년께 세워진 판테온은 2000여년 전 건물이지만 거의 손상을 입지 않고 남아 있어 ‘세계 건축사의 기적’으로 불린다. 카이사르와 같은 시대를 산 로마 정치인 아그리파(석고상의 바로 그 인물!)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이 판테온은 온갖 신을 모시는 ‘만신전’이었다. 건물 특징은 역시 돔 모양의 지붕.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명칭 또한 ‘반구형의 둥근 천장’을 가리키는 라틴어 도무스(domus)와 관련이 있다. 140년 동안 지어진 이 성당의 지붕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라는 금속세공사 출신 건축가가 얹은 것인데, 그가 참고한 것은 다름 아닌 판테온. 바로 이 건축으로 고딕 양식이 뒤로 물러나고 르네상스 양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재’ 부분은 필사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필사 작업을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담당했다. 수도사가 중요한 독자, 사서, 책을 만드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수도원마다 필사실이 따로 있었고, 학식 높은 수도사가 원본과 필사본을 대조해 틀린 곳을 바로잡았다. 양피지로 필사하는 것은 가죽 위에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뽕뽕 구멍을 뚫어 문신하듯 ‘새기는’ 작업에 가까웠다.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어 한 글자가 틀리면 한 페이지를 몽땅 다시 썼다. 화재 위험 때문에 필사실에는 불도 피우지 않았다. 수도사들은 덜덜 떨며 필사본을 만들다가 간혹 양피지 여백에 낙서를 적어두기도 했다. “주님, 춥나이다.”
필사하는 수도사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93년 그린 ‘마라의 죽음’.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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