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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에 온 어느 유럽 철학자의 영적 순례

등록 2015-12-17 22:26

잠깐독서
왜냐고 묻지 않는 삶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
인터하우스·1만3000원

 

한국은 정신을 앞선 기술의 피해자다. 기능은 뛰어난데 감동이 없다. 정신이 기술을 둘러치지 못해서. 테크닉 주변에, 성찰은 밀쳐져 있어서. 생각 없는 식탐 뒤 “내 얼굴에 대고 방귀를 뀌어대”는 듯한 “광란에 들뜬 서울의 밤”에 누가 와 있다.

알렉상드르 졸리앙. 스위스 출신 철학자이며 유럽의 밀리언셀러 작가로 이름났다. 태어날 때 탯줄이 목에 감겼다. 그에겐 뇌성마비 장애가 있다. 20살이 될 때까지 요양시설에서 지낸 뒤 철학을 공부했다. 유럽은 짜임새가 간단하고 튼튼한 그의 사색을 극구 반겼다. 특히 프랑스가 어딜 가든 그를 알아봤다. 유명인사가 된 삶. “지긋지긋”했다. 스승 서명원(베르나르 세네칼) 서강대 교수를 찾아 서울에 2013년 가족과 정착했다. 물질과 명예를 향한 욕망과 “지혜를 향한 깊은 열망 사이에서 대담한 다리 찢기”를 하는 데 한국은 최적지였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은 한국에 온 뒤 쓴 일기다. 그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 되려고 노력 중이고 선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에겐 기독교와 불교의 공존이 평화롭고,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는 데 불교가 간절하다. (신에게) ‘왜냐고 묻지 않기’는 그에게 도르래 같다. 불가해한 고통의 연속인 삶에서 ‘왜’를 묻지 않기만 해도, 같은 힘으로 더 큰 힘을 부추길 수 있단다. 이는 연약한 삶을 부축한다. “왜냐는 질문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순간순간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 어제의 낡은 나는 작아진 옷과도 같아, 자진해서 벽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 알몸으로 돌아감으로써” 매일 ‘두번째 탄생’을 하는 것. 지은이는 이를 ‘영적 탈의’라 부른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의 언어적 장치. ‘그러나’ 자리에 ‘아울러’를 쓰는 것. 생 자체인 “모순을 아우르”는 깨달음이다. “나는 지긋지긋하다. 아울러 나는 행복하다. 나는 신을 믿는다. 아울러 의혹으로 가득 차 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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