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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울이란 은하를 순환하는 그들

등록 2015-12-17 22:28

잠깐독서
지하철도의 밤
윤필 지음/창비·1만4000원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행복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 오르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엄마를 잃고 엄마 몫까지 살겠다며 영생의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철이는 금발의 메텔에 이끌려 은하수를 건넜다. 만화 <지하철도의 밤>은 이 <은하철도 999>와 그 원작이랄 수 있는 <은하철도의 밤>을 모티브 삼았다. 철이를 닮은 고2 석규와 메텔을 떠올리게 하는 금발의 여인이 주인공이다. 에스에프물인 <은하철도…>와는 달리 서울을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이 무대다.

비강남권에 사는 석규는 강남의 학교까지 지하철로 통학한다. 위장전입한 애라며 수군대는 급우들을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라며 무시하지만, 공부도 운동도 그닥인 ‘은따’ 외톨이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피곤하고 지루한 나날을 버텨내던 석규는 지하철에서 눈에 띄는 금발 여인을 발견한다. 그는 토한 채 쓰러진 사람에게 주저 없이 인공호흡을 하고, 노인들의 짐을 들어준다. 매일 지하철 2호선을 타고는 꼭 환승구간과 가까운 칸에 앉는다. 그를 지켜보며 석규는 설렌다. 그의 짐가방을 지켜준 것을 계기로 이름이 넬라임을 알게 된다. 지하철 2호선을 맴도는 이유도 듣게 된다. 지하철 2호선 개통식 날 미군 아버지의 머리 색을 한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다. 석규는 넬라를 도우려 가출까지 한다.

엄마를 잃은 이가 넬라라는 점이 다르지만, 둘이 열차에서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틀은 <은하철도 999>와 같다. 삼풍 백화점 붕괴, 당산철교 철거 등 배경인 1996년의 사회상이 곳곳에 담겼다. 미봉 같은 맺음부나 넬라가 현실을 사는 방식에 대한 성긴 묘사 등은 몰입도를 낮춘다. 하지만 몇몇 대사의 울림이 흠결을 덮는다. ‘별 볼 일 없는 놈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느냐’는 물음에 넬라는 “쓸쓸해 보여서…”라 답한다. 헤어질 땐 이런 말을 남긴다. “석규야 너의 시간을 살아.”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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