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 문학은 신경숙 표절 여파로 휘청거리면서도 문학과 독자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썼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소설가 장강명·김훈·황석영·박범신, 평론가 황현산, 시인 김사인·이성복, 소설가 신경숙.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 문학계
■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
“올해 문학계의 최고 흥행작은 작품이 아니라 스캔들이 될 모양입니다.”
지난 7월15일 서울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라는 토론회에서 문학평론가 임태훈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대로 신경숙 표절 사건은 2015년 한국 문학을 강타한 대지진이요 쓰나미였다.
소설가 이응준이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블로그에 신경숙 단편 ‘전설’의 표절 사실을 고발한 글을 올린 6월17일 이후 한국 문학은 유례없는 사회적 관심 속에 내홍을 겪어야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신경숙이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표절했다는 사실에 독자들은 분노와 실망감을 쏟아냈다. 이미 15년 전에 한 문예지를 통해 같은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의 잠잠했던 반응과는 천양지차였다. 문단 안에서도 문학권력 비판론자들을 중심으로 신경숙의 표절과 그를 두둔해 온 문단 주류를 향한 공격이 불거져 나왔다. 출판사 창비가 신경숙의 공식 ‘해명’과 함께 내놓은 최초의 입장문은 문단 안팎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문학권력 비판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창비가 대표이사 명의의 두번째 성명을 내면서 최초의 입장에서 후퇴하고 당사자인 신경숙이 언론 인터뷰에서 표절에 대한 ‘사과’ 뜻을 밝혔지만, 신경숙 문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문학동네·창비·문학과지성사 등 3대 문학 출판사와 소속 계간 문예지 편집위원들의 ‘문학권력’ 속성을 둘러싼 논란은 잦아들 줄 몰랐다. 결국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와 1기 편집위원들이 물러나고 창비도, 계간지 창간 50주년을 앞두고 일찍부터 예정된 절차였다고는 해도, 백낙청 편집인과 발행인, 주간 등이 퇴진했으며 문지의 계간 <문학과사회> 역시 30대 편집위원들로 세대 교체를 하면서 계간 문예지를 중심으로 움직여온 문학 장은 커다란 변화를 앞두게 되었다.
■ ‘세계의문학’ 폐간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와 함께 7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계간지 시대를 이끌었던 <세계의문학>이 2015년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했다. 1976년부터 이 잡지를 내온 민음사는 내년 하반기에 독자 눈높이에 맞춘 새 매체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7·8월호로 창간한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는 민음사가 선보일 새 매체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권당 29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다 세련된 판형과 감각적인 디자인, 심각하고 까다로운 비평 대신 짧고 친근한 서평을 담은 편집 방침으로 이 잡지는 문단 안팎에서 두루 호평을 받았다. 이와 함께 젊은 시인들이 내는 독립 잡지 <더 멀리>, 젊은 소설가 집단의 잡지 <후장사실주의> 같은 개성 있는 소규모 잡지들의 출현 역시 기존 문학 질서의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한편 장애 문인들의 입 구실을 해온 계간지 <솟대문학>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00호(겨울호)를 끝으로 문을 닫게 된 일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세종도서와 문학진흥법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세종도서 문학부문 우수도서 사업 규정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작품’이라는 규정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인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에서 토론회도 여는 등 격렬하게 반발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학창작기금 수혜자 선정 과정에서 블랙리스트를 통한 외압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또 한국문학번역원을 한국출판산업진흥원에 통합하는 기구 개편안이 제출돼 문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런 가운데 도종환 의원실은 한국근대문학관 설립을 핵심으로 하는 문학진흥법안을 내놓았지만, 후속 논의와 입법 절차는 지지부진한 편이다.
신경숙 표절사건 여파로
‘문학동네’ 등 체제 개편
기자 출신 김훈과 장강명 활약
황석영과 박범신 신작도 나와 ■ 탄생 100주년과 타계 문인들 김동리 서정주 황순원 등 한국 문학의 거목들이 올해 나란히 탄생 100년을 맞았다.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을 중심으로 해당 문인들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행사가 다채롭게 이어졌다. 원로 홍윤숙 시인과 박희진 시인, 문병란 시인이 타계했다. 50 중반 소설가 이상운도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 김훈과 장강명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과 장강명의 활약이 돋보였다.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는, 비록 양은냄비와 라면 경품 논란이 없진 않았지만, 한국 작가의 책으로는 모처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면서 표절 사건 이후 떨어져 나간 문학 독자들을 어느 정도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2011년 장편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장강명은 올 한해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세 장편을 내놓으며 무서운 생산력을 과시했다. <그믐, 또는…>과 <댓글부대>는 각각 올해 문학동네작가상과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어서 작가는 기존의 한겨레문학상과 지난해 수림문학상(수상작 <열광금지, 에바로드>)에 이어 ‘공모 문학상 4관왕’의 신화를 쓰게 되었다. 박범신은 일곱권짜리 중단편전집과 문학앨범 <작가 이름, 박범신> 그리고 장편 <당신> 등 책 아홉권을 한꺼번에 내놓는 것으로 칠순을 자축했다. ‘영원한 청년 작가’를 자처하는 그의 신작 <당신>은 치매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노년의 사랑을 다룬 것이어서 이채로웠다. 한국의 대표 단편 101편을 작가 및 작품 설명과 함께 실은 10권짜리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을 연초에 펴냈던 황석영도 한해가 저물 무렵 내놓은 경장편 <해질 무렵>으로 발전 위주 한국 근대화의 빛과 그늘을 조명했다. 전성태는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으로 이효석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젊은 작가 한은형은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거짓말>과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로, 그보다 더 젊은 작가 김엄지는 경장편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와 역시 첫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조선족 작가 금희가 창비에서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낸 것도 주목할 만했다. 김영하 산문집 <말하다>와 <읽다>, 성석제 산문집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출판사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로 나온 허수경 산문집 <너 없이 걸었다>와 배수아 산문집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도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 김사인과 최정례, 이성복과 황현산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시인 자신이 관여하는 출판사 창비의 만해문학상을 ‘사양’하고 임화문학예술상 수상작이 되었다. 어느 상을 받아도 부족하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을 만큼 올 한해 시단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 할 만했다. 올해 오장환문학상과 미당문학상을 함께 받은 최정례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도 발랄한 유머와 깊은 사유가 어우러진 시의 진경을 펼쳐 보였다.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 <극지의 시> <불화하는 말들> <무한화서>는 시인 득의의 비유와 발상을 통해 시를 읽고 쓰는 일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스타’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시화집 <우물에서 하늘 보기>도 특유의 유려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시와 세상의 관계를 풀어 설명해 주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문학동네’ 등 체제 개편
기자 출신 김훈과 장강명 활약
황석영과 박범신 신작도 나와 ■ 탄생 100주년과 타계 문인들 김동리 서정주 황순원 등 한국 문학의 거목들이 올해 나란히 탄생 100년을 맞았다.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을 중심으로 해당 문인들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행사가 다채롭게 이어졌다. 원로 홍윤숙 시인과 박희진 시인, 문병란 시인이 타계했다. 50 중반 소설가 이상운도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 김훈과 장강명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과 장강명의 활약이 돋보였다.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는, 비록 양은냄비와 라면 경품 논란이 없진 않았지만, 한국 작가의 책으로는 모처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면서 표절 사건 이후 떨어져 나간 문학 독자들을 어느 정도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2011년 장편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장강명은 올 한해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세 장편을 내놓으며 무서운 생산력을 과시했다. <그믐, 또는…>과 <댓글부대>는 각각 올해 문학동네작가상과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어서 작가는 기존의 한겨레문학상과 지난해 수림문학상(수상작 <열광금지, 에바로드>)에 이어 ‘공모 문학상 4관왕’의 신화를 쓰게 되었다. 박범신은 일곱권짜리 중단편전집과 문학앨범 <작가 이름, 박범신> 그리고 장편 <당신> 등 책 아홉권을 한꺼번에 내놓는 것으로 칠순을 자축했다. ‘영원한 청년 작가’를 자처하는 그의 신작 <당신>은 치매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노년의 사랑을 다룬 것이어서 이채로웠다. 한국의 대표 단편 101편을 작가 및 작품 설명과 함께 실은 10권짜리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을 연초에 펴냈던 황석영도 한해가 저물 무렵 내놓은 경장편 <해질 무렵>으로 발전 위주 한국 근대화의 빛과 그늘을 조명했다. 전성태는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으로 이효석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젊은 작가 한은형은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거짓말>과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로, 그보다 더 젊은 작가 김엄지는 경장편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와 역시 첫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조선족 작가 금희가 창비에서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낸 것도 주목할 만했다. 김영하 산문집 <말하다>와 <읽다>, 성석제 산문집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출판사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로 나온 허수경 산문집 <너 없이 걸었다>와 배수아 산문집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도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 김사인과 최정례, 이성복과 황현산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시인 자신이 관여하는 출판사 창비의 만해문학상을 ‘사양’하고 임화문학예술상 수상작이 되었다. 어느 상을 받아도 부족하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을 만큼 올 한해 시단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 할 만했다. 올해 오장환문학상과 미당문학상을 함께 받은 최정례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도 발랄한 유머와 깊은 사유가 어우러진 시의 진경을 펼쳐 보였다.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 <극지의 시> <불화하는 말들> <무한화서>는 시인 득의의 비유와 발상을 통해 시를 읽고 쓰는 일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스타’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시화집 <우물에서 하늘 보기>도 특유의 유려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시와 세상의 관계를 풀어 설명해 주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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