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문 사회 분야에서 화제가 된 책들. 제도권 학계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근현대사를 복원한 책들이 다수 나왔다.
2015년 학술계
지난해에는 학자들이 선보인 ‘○○사회’라는 개념어가 유행했지만, 올해는 민심과 여론이 만든 ‘흙수저’ ‘헬조선’ ‘노오력’ ‘엔(N)포세대’ 같은 신조어가 대세였다. 지식 생산도 이런 ‘현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활발히 이뤄졌고, 대학 안에서는 미국 박사 중심 제도권의 지적 위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과 퇴행의 움직임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 현장의 목소리
신진 저술가들이나 대학 바깥의 독립연구자들이 자기 체험을 자양분 삼아 ‘현장’에서 희망과 절망을 캐내는 활약상이 돋보였다. 노동운동가 박점규가 전국 28곳의 노동현장을 발로 뛰며 기록한 <노동여지도>, 대학 인문학 강사의 현실을 낱낱이 드러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309동 1201호, 본명 김민섭) 같은 책들도 필자들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학술 논문이나 에세이류에 속하지 않는 글쓰기 스타일과 ‘장소’를 중시한 저서로 인정받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이 책들에 대해 “르포르타주의 부활 또는 현장에 뿌리박은 지식 생산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징후”라며 “내년에도 지식인들이 ‘하방’하여 ‘지식의 민주화’를 이뤄내 전망 잃은 한국 사회의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중도적 사회 비평서 인기
사회 비평 분야에서도 언론계 또는 법조계에 종사하는 전문가 필자들이 약진했다. 언론인 권석천의 <정의를 부탁해>,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이 대표적이다. 이 책들은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얘기하면서도 중도적 시선으로 거부감이 적었다는 평이 나온다. ‘서양 좌파’라는 별칭이 붙긴 했지만 한국에서 외신기자로 일한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또한 비슷한 경우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 엠디(MD)는 “예전에는 기존 세계관에 도전하며 강하게 어필하는 진보적 학자들의 저작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지금은 중도보수에 가까운 지식인들이 상식적인 주장을 펴는 책들 다수가 소비되고 읽히는 흐름을 도서시장에서 뚜렷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퇴행 현상이며 내용이 새롭거나 참신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비상식적이고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그나마 대화의 통로를 열어놓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라는 것이다.
신진 독립연구자들 맹활약
진보보다 중도보수가 눈길
페미니즘과 혐오발언 득세 ■ 혐오의 시대와 페미니즘 2015년은 ‘혐오의 시대’로 일컬어진다. 연초 터키에서 실종된 김아무개군이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그가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는 글을 썼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한 팝 칼럼니스트는 “아이에스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말을 남겼고, 남성잡지 <맥심 코리아>는 여성 대상 폭력 이미지를 표지에 실었다가, 비판에 휩싸인 끝에 전량 폐기처분 하기도 했다. 여성혐오에 저항하며 온라인에 나타난 ‘메갈리안’은 혐오의 말을 ‘반사’하는 발화로 유명해졌다. “이제 남성들이 ‘한남충’이나 ‘씹치남’이 아님을 증명할 때가 온 것”(유민석, <여/성이론> 겨울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혐오발언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나왔다. 동성애자를 좌파와 연결시키는 극우 보수진영의 혐오담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여성학회가 11월 연 추계학술대회 제목은 ‘‘혐오’의 시대, 공감의 윤리’였다. 반년간지 <여/성이론>은 2015년 여름호에 특집 ‘혐오의 시대’에 이어 2015년 겨울호에 ‘퇴행의 시대, 페미니즘을 급진화하기’로 특집을 꾸몄다. 페미니즘 관련 단행본으로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리베카 솔닛)가 화제에 올랐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 ‘맨스플레인’(man+explain)이 ‘단골 어휘’로 등록됐고, 비슷한 말로 ‘설명충’ ‘훈장질’ 같은 신조어가 쓰이기도 했다.(임국희, <여/성이론> 겨울호) 권위와 위계로 상대를 가르치고 여성 화자의 말문을 막으려 한다는 점에서 맨스플레인은 혐오발화와도 연관된다.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는 윤보라·임옥희·정희진 등 쟁쟁한 필자들이 참여해 한국의 여성혐오 현상을 분석했다. 지난 5월 열린 국내 최대의 진보좌파 학술문화행사 ‘맑스 코뮤날레’에서는 페미니즘과 마르크시즘의 협력이 제안되기도 했다. ■ 대학 사회와 근현대사 대학 구조조정의 회오리 가운데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을 다룬 <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대학을 ‘기업 노예’로 빗댄 <진격의 대학교>(오찬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등이 대학 사회의 맨얼굴을 보였다는 평을 받는다. 사회학자 김경만 서강대 교수가 쓴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은 국내 학술 문화와 지식 풍토 전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관심을 끌었다. 단행본 학술서들 가운데 성과라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강행된 가운데서도 근현대사를 다룬 수준 높은 책들이 다수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군사주의, 성노동, 이주노동을 ‘죽음정치적 노동’이란 개념으로 설명한 이진경의 <서비스 이코노미>, ‘학출’ 활동가와 변혁운동을 분석한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유경순) 1·2권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와 함께 치밀한 서술과 잊힌 과거사를 추적·복원한 책으로 인정받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진보보다 중도보수가 눈길
페미니즘과 혐오발언 득세 ■ 혐오의 시대와 페미니즘 2015년은 ‘혐오의 시대’로 일컬어진다. 연초 터키에서 실종된 김아무개군이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그가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는 글을 썼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한 팝 칼럼니스트는 “아이에스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말을 남겼고, 남성잡지 <맥심 코리아>는 여성 대상 폭력 이미지를 표지에 실었다가, 비판에 휩싸인 끝에 전량 폐기처분 하기도 했다. 여성혐오에 저항하며 온라인에 나타난 ‘메갈리안’은 혐오의 말을 ‘반사’하는 발화로 유명해졌다. “이제 남성들이 ‘한남충’이나 ‘씹치남’이 아님을 증명할 때가 온 것”(유민석, <여/성이론> 겨울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혐오발언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나왔다. 동성애자를 좌파와 연결시키는 극우 보수진영의 혐오담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여성학회가 11월 연 추계학술대회 제목은 ‘‘혐오’의 시대, 공감의 윤리’였다. 반년간지 <여/성이론>은 2015년 여름호에 특집 ‘혐오의 시대’에 이어 2015년 겨울호에 ‘퇴행의 시대, 페미니즘을 급진화하기’로 특집을 꾸몄다. 페미니즘 관련 단행본으로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리베카 솔닛)가 화제에 올랐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 ‘맨스플레인’(man+explain)이 ‘단골 어휘’로 등록됐고, 비슷한 말로 ‘설명충’ ‘훈장질’ 같은 신조어가 쓰이기도 했다.(임국희, <여/성이론> 겨울호) 권위와 위계로 상대를 가르치고 여성 화자의 말문을 막으려 한다는 점에서 맨스플레인은 혐오발화와도 연관된다.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는 윤보라·임옥희·정희진 등 쟁쟁한 필자들이 참여해 한국의 여성혐오 현상을 분석했다. 지난 5월 열린 국내 최대의 진보좌파 학술문화행사 ‘맑스 코뮤날레’에서는 페미니즘과 마르크시즘의 협력이 제안되기도 했다. ■ 대학 사회와 근현대사 대학 구조조정의 회오리 가운데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을 다룬 <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대학을 ‘기업 노예’로 빗댄 <진격의 대학교>(오찬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등이 대학 사회의 맨얼굴을 보였다는 평을 받는다. 사회학자 김경만 서강대 교수가 쓴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은 국내 학술 문화와 지식 풍토 전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관심을 끌었다. 단행본 학술서들 가운데 성과라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강행된 가운데서도 근현대사를 다룬 수준 높은 책들이 다수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군사주의, 성노동, 이주노동을 ‘죽음정치적 노동’이란 개념으로 설명한 이진경의 <서비스 이코노미>, ‘학출’ 활동가와 변혁운동을 분석한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유경순) 1·2권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와 함께 치밀한 서술과 잊힌 과거사를 추적·복원한 책으로 인정받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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