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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20세기 미디어 이론의 신종 ‘키틀러’

등록 2015-12-31 20:14

잠깐독서
기록시스템 1800·1900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음, 윤원화 옮김
문학동네·4만3000원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 ‘유럽의 마셜 매클루언’으로 불리는 독일의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1943~2011)의 교수자격취득 논문(1982)이 원전 번역됐다. 문학·철학·문헌학으로 땋은 키틀러의 매체론은 20세기 고전으로 일컬어진다. ‘키틀러유겐트’(키틀러를 연구하는 팬덤)도 탄탄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1999년 강의록인 <광학적 미디어>가 2011년 출간돼 거의 처음 소개되다시피 했다. 우리나라에서 키틀러는 ‘읽으려면 읽고’ 정도의 부가 자료로도 삼아지지 못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없고 모던한 포스트(서신)가 있다고 한 건 20세기 독일 사회학의 거인 니클라스 루만이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을 뒤흔들지 못할 거란 뜻이었다. 키틀러의 반기. “상황은 미디어가 결정”하고 “사물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미디어”이고 ‘의미’보다 ‘행위’가 결정적이라 봤다. 이를 1800년대와 1900년대 기록시스템 이론으로 증명하는 이 논문은 초유의 관점으로 큰 논란을 낳았다.

괴테도 1800년식 기록시스템의 개체일 뿐이라 해버린다. 글의 성스러운 권위는 19세기까진 책 외의 시청각 미디어가 전무해서 얻어졌다고 쓴다. 최초로 타자기를 사용한 문헌학자 니체가 연 1900년식 기록시스템. 타자기, 축음기, 영화 등 기술적 기록시스템이 등장하면서 글, 특히 문학의 정보 독점이 깨진다. 키틀러 이론의 중추는 ‘시간’. 그에게 미디어란 인간이 시간을 인식, 저장, 전달하는 도구다. 1990년대에 키틀러는 모든 기록미디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할 컴퓨터가 시간 흐름에 어떻게 개입할지 주목했다.

난해한 문체로 방대한 분량에 풀어놓은 박식을 따라가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만 키틀러를 일주할 때는 덜 피곤할 것이다. 사람 잡는 에너지와 유머가 못 도망가게 감친다. 새해에 제일 갖고 싶은 간이 키틀러 간이다. 진짜 크다. 위원 13명이 2년간 이 글을 심사하는 동안 홀로 유명해진 키틀러는 교수 자격보다 화려한 사유의 색상환을 펼쳐들고 제 길을 갔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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