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술은 음료가 아니라 과학이라네!

등록 2015-12-31 20:27수정 2016-01-02 10:07

미국의 과학 기자가 쓴 <프루프: 술의 과학>은 효모에서 숙취까지 술을 둘러싼 여덟 단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사진은 여러 종류의 칵테일.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미국의 과학 기자가 쓴 <프루프: 술의 과학>은 효모에서 숙취까지 술을 둘러싼 여덟 단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사진은 여러 종류의 칵테일.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효모에서 숙취까지 술의 과학
미국 기자 ‘올해의 과학책’
효모의 기원은 수수께끼
숙취 해소에는 역시 헛개나무
프루프: 술의 과학
아담 로저스 지음, 강석기 옮김
엠아이디(MID)·1만5000원

새해 첫날부터 술 얘기를 하자니 민망하긴 하다. 그러나 구랍 한달여를 술이 제공하는 천국과 지옥에서 보낸 이들이라면 ‘술의 과학’이라는 책의 부제에 솔깃해하지 않을까.

미국의 과학 및 기술 잡지 <와이어드> 편집자인 아담 로저스가 쓴 <프루프: 술의 과학>은 효모에서 숙취까지 술을 둘러싼 여덟 단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효모와 숙취 사이에는 차례로 당, 발효, 증류, 숙성, 맛과 향, 몸과 뇌 장(章)이 자리한다. ‘프루프’(proof)는 ‘디그리’(degree)와 비슷하게 술의 도수를 가리키는 말. 미국에서 지난해 나온 이 책은 <가디언> <와이어드> <엔비시(NBC)> 등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과학책’으로 뽑혔다. 위스키의 고장 스코틀랜드 등의 생생한 현장 취재와 과학적 서술, 역사적 일화와 유머 감각으로 지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술은 사교의 수단이기도 하고, 예술의 촉매제이기도 하며, 온갖 사고와 폭력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루프>의 지은이에게 술은 무엇보다 과학이다. 알코올을 만드는 미생물인 효모는 세포생물학과 유기화학 분야의 출범에 기여했다. 당은 농업과 식물학에 관계되며, 발효는 기본적으로 생물학의 영역이다. 고대 이집트 연금술사들이 시작한 증류는 의학과 물리학, 야금학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으며, 숙성은 화학 작용에 해당한다. 맛과 향은 각각 신경과학과 심리학, 생물학과 유전학으로 설명되며, 알코올이 우리 몸과 뇌에 작용하는 기제를 밝히자면 신경과학과 사회학, 인류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숙취는 생리학과 유전학, 약학, 신경과학 등의 설명을 기다린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류와 알코올의 관계는 인류와 자연 세계, 즉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만든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홀로그램이다.”

누구나 손쉽게 즐기는 게 술이지만, 술의 제조 과정에 얽힌 과학에는 대개들 무지하다. 어떤 부분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채 숙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가령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술 제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균류인 효모의 존재와 작용이 밝혀진 것은 불과 150년 전의 일이다. “인류는 효모가 거기 있는 줄도 모른 채 효모에 의존해 살아왔다.” 술뿐만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한 효모의 쓸모는 거의 불 다음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연소(불)가 인류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반응이라면, 효모는 화학에서 두 번째 자리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효모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양조장과 야생 숲 등에서 견본을 채취해 효모의 기원을 추적하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지은이는 술을 만드는 재료 및 과정에 대한 과학적 사실과 과학사의 일화들로 공시적·통시적 서술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 19세기 일본 양조업자 다카미네 조키치, 면역계가 의사소통 신호로 쓰는 분자 사이토카인 수치가 숙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한국 연구팀의 연구 결과 같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증류는 13세기 유럽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18세기 후반까지도 숙성된 술을 팔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래 숙성된 술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물량이 달리자 큰 위스키 회사들은 “점점 숙성 연도를 표시하지 않은 제품을 늘려가고 있”으며 “숙성 없이 오래 숙성된 맛이 나는 술을 만드는” 데에 골몰한다. 한편으로는 술통의 내용물을 진동시켜 숙성 효과를 높이고자 음악을 들려주는 ‘음향술통숙성과정’도 등장했다.

술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 데 비해 술의 부정적 결과라 할 숙취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부족하단다. ‘알코올숙취연구그룹’(AHRG)이라는 연구 집단은 “사람들이 숙취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동안 탈수, 저혈당, 착향료, 메탄올 등이 숙취의 원인으로 꼽혔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것. 지은이는 책 말미에 술고래 친구들을 불러 숙취 처방 실험을 직접 해 보기도 하는데, 숙취를 해소하지도 못했고 숙취와 관련한 유의미한 과학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실패했다. 다만 “항염증제인 클로탐(톨페남산), 비타민 비(B)6 유사체인 피리티놀, 아유르베다 약초 조성물인 리브(Liv).52, 헛개나무 추출물 이렇게 네 가지만이 임상을 통해 숙취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상태”라는 조언을 건넨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