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10년의 빛
밀양대책위·밀양에 연대한 작가들/리슨투더시티·3만5000원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백서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3만원 봄이면 꽃분홍색 철쭉이 산을 뒤덮고, 가을이면 붉은 감이 집집 마당마다 맺히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산골이었다. 흙을 갈아 모를 심고, 대처에 나간 자식들에게 보낼 깨를 털던 굵고 갈라진 손은 호미와 지팡이 말고는 들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높이 94m, 20층 아파트보다 두배 가까이 높고 보통 송전탑보다 자기장이 두세배 높은 괴물이 765㎸ 송전탑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다는 발표가 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노파들은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이어 매고, 행여 풀릴까 자물쇠를 채웠다. 다 죽이고 공사해라, 세찬 비바람도 굵은 눈보라도 아랑곳않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두 책은 2005년 정부가 신고리 원전에서 경남북부를 잇는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작된 밀양 어르신들의 반대 투쟁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핵발전소 밀집도가 0.2077로 일본의 2배, 미국의 20배, 캐나다의 200배에 이르고, 전기가 남아도는데도 원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와 한전은, 송전탑이 주민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조차 무시한 채 끝끝내 공사를 강행했다. 용역과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형사소송도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했고, 유한숙 어르신은 음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는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싸움 중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 먼저인지, 최소한 죽음만이라도 막는 것이 먼저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경황없고 뼈아픈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가장 두려운 것은 ‘잊히는 것’이었다. 꿈에서도 잊히지 않을 이 싸움의 역사를 바위에라도 새기는 심정으로 이 백서를 꿈꿨다”고 말한다. 그렇게 새긴 기록은 ‘패배의 역사’가 아니다. “정부에서 하자카는 대로 안 하면 너거 함 죽어봐라 이런 거 같은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송전탑 싸움을 꼭 이긴다는 희망은 없을 것 같지만, 송전탑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알릴 계기는 만들어 준 것 같애요… 잘 싸울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지 않았을까… 우리가 끝은 아닌 것 같으니까.”(단장면 동화전마을 박은숙) “옛날에는 내 혼자만 잘 되면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졌는데 지금은 내 주변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데 저항을 해야지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부북면 위양마을 서종범) 밀양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지만, 이웃과 어깨를 겯고 연대할 기운이 남았다는 점에서 절망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밀양대책위·밀양에 연대한 작가들/리슨투더시티·3만5000원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백서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3만원 봄이면 꽃분홍색 철쭉이 산을 뒤덮고, 가을이면 붉은 감이 집집 마당마다 맺히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산골이었다. 흙을 갈아 모를 심고, 대처에 나간 자식들에게 보낼 깨를 털던 굵고 갈라진 손은 호미와 지팡이 말고는 들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높이 94m, 20층 아파트보다 두배 가까이 높고 보통 송전탑보다 자기장이 두세배 높은 괴물이 765㎸ 송전탑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다는 발표가 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노파들은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이어 매고, 행여 풀릴까 자물쇠를 채웠다. 다 죽이고 공사해라, 세찬 비바람도 굵은 눈보라도 아랑곳않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두 책은 2005년 정부가 신고리 원전에서 경남북부를 잇는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작된 밀양 어르신들의 반대 투쟁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핵발전소 밀집도가 0.2077로 일본의 2배, 미국의 20배, 캐나다의 200배에 이르고, 전기가 남아도는데도 원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와 한전은, 송전탑이 주민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조차 무시한 채 끝끝내 공사를 강행했다. 용역과 공권력을 동원한 폭력,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형사소송도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했고, 유한숙 어르신은 음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는 그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싸움 중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 먼저인지, 최소한 죽음만이라도 막는 것이 먼저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경황없고 뼈아픈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가장 두려운 것은 ‘잊히는 것’이었다. 꿈에서도 잊히지 않을 이 싸움의 역사를 바위에라도 새기는 심정으로 이 백서를 꿈꿨다”고 말한다. 그렇게 새긴 기록은 ‘패배의 역사’가 아니다. “정부에서 하자카는 대로 안 하면 너거 함 죽어봐라 이런 거 같은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송전탑 싸움을 꼭 이긴다는 희망은 없을 것 같지만, 송전탑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알릴 계기는 만들어 준 것 같애요… 잘 싸울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지 않았을까… 우리가 끝은 아닌 것 같으니까.”(단장면 동화전마을 박은숙) “옛날에는 내 혼자만 잘 되면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졌는데 지금은 내 주변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데 저항을 해야지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부북면 위양마을 서종범) 밀양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지만, 이웃과 어깨를 겯고 연대할 기운이 남았다는 점에서 절망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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