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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방학에 대한 예의는 신나게 노는 거야

등록 2016-01-07 20:10수정 2016-12-30 10:22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오메 돈 벌자고?
박효미 지음, 이경석 그림/창비 펴냄(2011년)

 

“겨울 방학에 뭐하니?” 하고 아이들에게 묻기가 미안하다. “우리 어릴 때는 방학 때 아무것도 안하고 신나게 놀기만 했는데. 불쌍해” 하는 말이나 덧붙이게 돼서 말이다. 내가 아이라면 어른들이 이런 소리 하는 게 싫을 것 같다. 그렇게 안타까우면 말만 하지 말고 세상을 바꿔 놀게라도 해주든가.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게 어른이다.

하지만 방학에는 원래 과업이 있는 법이다. “멋대로 자고 내키는 대로 일어나는” 것과 “책가방은 방학한 날 던져 놓은 그대로 책상 밑에 처박”아 두는 일이다. 개학 전날 늦은 밤까지 숙제를 하느라 혼쭐이 나더라도 일단 방학에는 온힘을 다해 빈둥거려야 한다. 지금부터 30여년 전 아이들이라면 당연하다고 여겼던 2대 과업이다. 딸 부자집 큰딸 가희가 생각하는 방학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전라도 사투리가 차지기 그지없는 박효미의 <오메 돈 벌자고?>는 초등학교 5학년 가희의 겨울방학 소동을 다룬 동화다. 모든 건 엄마가 연탄 한 장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방에서 연탄을 빼며 시작되었다. 따뜻한 방안에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 있던 가희는 깔끔 떠는 동생 나희와 한방을 쓰는 날벼락을 맞는다. 백만장자란, 한 100만원쯤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는 가희의 방학 목표는 “돈 벌자고야”가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궁리 끝에 마을에서 가장 평평하고 널찍하며 겨우내 얼음이 얼어 있는 가희네 논, 일명 얼음꽝에서 장치기하는 아이들에게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시류에 영합하는 경제동화인 줄 오해할 만한 백만장자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된다. 가희는 삶의 경제에 뛰어들며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이자 놀이의 재미(?)까지 깨닫는다.

동화는 두 가지 서사가 얽혀 들며 절정으로 치닫는데, 하나가 돈 벌기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의 겨울 놀이다. 얼음꽝 입장료를 받으려고 팔석이 패거리 세계로 뛰어든 가희는 사내아이들의 놀이에 눈을 뜬다. 장치기도 하고, 마을 뒷숲 무덤에서 비료 포대를 깔고 미끄럼도 탄다. 춥고 배고프니 모닥불을 피워 콩도 구워먹는다. 돈 대신 구슬을 입장료로 받은 가희는 구슬치기에 나서고 이어 ‘짤짤이’까지 도전한다. 동화 속에는 이제 추억이 된 한겨울 아이들의 놀이가 총출동된다.

스키나 스케이트 혹은 눈썰매처럼 요즘 겨울 놀이는 정해진 장소와 도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옛날 아이들의 놀이는 삶에서 나왔다. 아니, 원래 아이들의 놀이라는 게 그렇다. 그 유명한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 소여는 종일 페인트칠하는 벌을 받지만, 이 일마저 놀이로 바꿔 친구인 벤에게 넘겨버린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곳은 어디든 놀이터다. 아이들은 친숙한 것을 가지고 놀 때 이야기를 만든다.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놀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스스로 배우고 길을 찾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뭔가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가희 역시 그랬다. 짤짤이로 한 번에 일확천금을 꿈꾸다 그나마 가진 걸 몽땅 잃는다. 하지만 스스로 깨닫는다. 백만장자는 그만두고 더 신나게 노는 게 최고라는 걸. 초등 5~6학년.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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