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선거는 축제다. 나의 한 표가 모여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를 뽑게 되니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런데 이상한 사람이 연이어 당선된다. 그리고 약속을 저버린다. 누구는 “속았다”고 혀를 차고 누구는 “그럴 줄 몰랐냐”며 냉소를 날린다. 투표는, 선거는, 나랏일 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최상의 방법인가.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라는 책 제목은 지은이의 문제의식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벨기에의 문화사학자인 그는 ‘민주주의 피로감 증후군’의 원인을 선거에서 찾았다. 원래 선거는 교황 선출처럼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 내부에서 만장일치에 도달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수단”이었지만,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가장 나은 사람’을 뽑는 ‘소수특권적’ 방식으로 변질했다고 짚었다. 제3계급인 부르주아가, 귀족과 성직자에게 집중된 권력을 빼앗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선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안하는 이상적인 대표 선출 방식은 제비뽑기다. 2000년대 들어 무작위 추첨으로 대표를 선발해 국가 대사를 논하게 한 사례가 적지 않다.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2004년 시민 160명을 뽑아 1년 동안 논의해 선거제도 개혁안을 내놓게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2013년 1년 동안 시민 66명을 제비뽑기로 뽑아 정치인 33명과 결합시켜 헌법 8개 조항을 검토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대표의 능력과 지적 능력에 대한 회의가 있을 수 있기에 나라마다 다양한 보완책을 활용하기도 한다.
제비뽑기는 필연적으로 숙의 민주주의와 연결된다. 타의든 자의든 국민의 대표가 된 사람들이 토론에 깊숙이 참여해 현안을 이해하게 되면 훨씬 수준 높은 해결책을 내놓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녹색당은 정당의 모든 대의원을 제비뽑기로 선출해 당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제비뽑기 민주주의가 가능한 건지, 몸소 체험하고 있는 그들의 평가가 궁금해진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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