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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리 없는 힘 ‘감정’에 주목하다

등록 2016-01-14 21:16수정 2016-01-15 14:44

예나 지금이나 실업은 공포 그 자체다. 실업의 공포라는 감정은 사회 변화의 숨은 동력으로 작용한다고 감정사회학은 설명한다. 사진은 1929년 대공황 당시 구직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미국의 실업자.  한길사 제공
예나 지금이나 실업은 공포 그 자체다. 실업의 공포라는 감정은 사회 변화의 숨은 동력으로 작용한다고 감정사회학은 설명한다. 사진은 1929년 대공황 당시 구직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미국의 실업자. 한길사 제공
다수 구성원의 ‘감정적 분위기’는
거시적 사회변화의 숨은 동력
‘합리성 패러다임’ 보완역할 모색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박형신·정수남 지음/한길사·2만4000원

21세기 한국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몸 관리 열풍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다이어트는 기본, 운동은 선택이지만 성형은 필수가 돼가는 모양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얼굴 한두 군데쯤 칼 대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주름 펴준다는 보톡스는 이제 아무나 맞는 주사가 됐다. ‘몸꽝’, ‘얼꽝’, ‘숏다리’, ‘얼큰이’ 따위 몸과 관련된 경멸적·비하적 표현들은 이 열풍의 강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가위 전사회적인 이 유행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전의 모든 시기와 세대를 압도하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열정적 투자는 그저 미디어의 선동에 넘어간 결과이거나 남 따라하기일 뿐인가?

제목이 암시하듯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합리적 이성의 잣대만으로는 읽어내기 어려운 이 폭발적인 신드롬의 근저에 ‘공포’라는 감정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무한경쟁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취업을 하거나 취업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즉 실업의 불안과 공포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남들보다 나아 보이거나 젊어 보이게끔 하는 자기계발에 내몰린 결과라는 것이다. “육체에 대한 관심은 타인과의 차별화 전략들 중 하나로, (…) 무한경쟁과 불안한 미래 앞에서 주체가 겪는 불안과 공포는 ‘자기애’를 더욱 강화한다.”

공포가 우리 사회에 불러들인 것은 몸가꾸기 열풍만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문화, 희망을 더 이상 말하지 않는 냉소주의, 경쟁적인 명품·명차 소비로 나타나는 스노비즘(Snobbism), 저항의 좌표를 잃어버린 혐오문화, 과거에서 미래를 찾는 복고주의는 공포가 낳은 또 다른 자식들이다.

2011년 청년실업네트워크 회원들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현실을 풍자한 ‘알몸졸업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11년 청년실업네트워크 회원들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현실을 풍자한 ‘알몸졸업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현대사회의 공포는 전통사회와는 다른 의미의 불확실성, 예측불가능성에서 온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이전과 다른 차원의 불안과 공포가 일상화된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고용의 불안정성과 단기적인 고용문화를 정착시켰다. 수시로 이뤄지는 대량 해고, 명예퇴직 압박, 비정규직 증가, (청년)실업 양산 등은 개인의 일상에서 장기전망을 무용한 것으로 만들었다. 다수는 단기성, 경쟁, 축소, 불안정성, 불확실성, 즉시성으로 상징되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에 따른 불안과 공포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내재화, 사사화(Privatization)된다.

그렇다 해도, 개인의 느낌에 불과한, 그래서 지극히 사적 영역인 감정이 어떻게 집단적이고 전사회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감정은 개인적으로 경험되지만, 사회에서 종종 집단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집합적’ 속성을 지닌다.” 이 집합적 속성이 ‘감정적 분위기’의 요체다. 감정적 분위기는 사회가 겪는 공통의 사건, 예컨대 세월호나 메르스를 둘러싸고 특정 시기에 집중 표출되는 집합적 감정과 달리 좀 더 오래 지속되는, 사회구성원 다수가 감정적으로 연결돼 있는 무형의 집단적 기운을 뜻한다. 이 저작은 이런 감정적 분위기가 대규모의 거시적 사회변화에서 어떤 의미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규명하려 시도한다. ‘공포 감정의 거시사회학’이란 부제가 붙은 까닭이다.

기존 사회학 연구에서 감정은 늘 ‘서자’로 취급됐다. 사회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막스 베버도 감정은 합리성과 상반된 것으로 여겼다. 마르크스도 예외가 아니다. 사회구성론이나 사회결정론에서 감정은 늘 논외로 밀렸다. 즉흥적, 일시적, 충동적이기 쉬운 감정은 합리성의 기반을 흔들고 방해하는 요소로 간주됐다. 감정은 합리성에 의해 극복되거나 통제되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행위는 비논리성, 우발성·우연성·복잡성의 집합체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차르 체제의 억압과 수탈에서 노동자와 농노계급이 느꼈을 감정을 배제한 채 러시아혁명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감정은 행위자의 배후에서 작동하며, “구조와 행위를 연계시킨다.”

이를 현실에 적용하면, 예컨대 가족단위 참여(동원)가 특징적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후손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라는 ‘도덕감정’의 소산이다. 감정사회학의 유용성은 분석에만 머물지 않는다. 빈민 문제에 감정사회학적으로 접근한다면, 퇴행적 행위자에게는 재사회화 전략을, 체념적 행위자에게는 직업교육 전략을, 순응적·자기혁신적 행위자에게는 정책적 배려를 정책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다. “거시적 감정사회학은 (…) 감정적 차원의 사회정책 설계를 제안함으로써, 기존 사회학과 정책 설계에서 놓치고 있던 연결고리를 잇고자” 한다.

그렇다고 필자들이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분석에서 감정을 ‘주연’으로 내세우려는 것은 아니다. 대신 “합리성의 패러다임으로 해명될 수 없는 여백을 메워주는” 감정의 역할에 주목한다. 엘리아스와 바바렛의 계보를 잇는 이들은 일종의 ‘주연급 조연’으로 감정의 ‘복권’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행위에 끼친 인과관계는 통계적 수단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고유의 한계가 있다. 거시사회학적 감정 연구가 여태 경험적 차원으로 진척되지 못한 이유다. 이런 벽을 넘어서려면 심층면접이나 구술사, 생애사와 같이 행위 주체의 ‘진술’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복원·해석하는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필자들은 강조한다. 감정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맥락’의 파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종의 ‘첫 발자국’이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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