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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피부·계급 같아도 ‘텃세’로 차별

등록 2005-01-28 18:40수정 2005-01-28 18:40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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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1897~1990)는 <문명화 과정> <궁정사회>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학자다. 이 두 책에서 엘리아스는 서구 사회에서 ‘야만’이 ‘문명’으로 옷을 갈아입는 과정을 역사사회학적으로 살핌으로써 신선한 학문적 통찰을 안겨주었다.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는 인간 사회에 대한 그의 특별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또다른 저작이다. 앞 책들이 수백 년 전의 역사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이 책은 현대 사회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독일계 유대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던 엘리아스는 제자 존 스콧슨과 함께 1950년대 말 영국의 한 지역을 골라 몇년에 걸쳐 인류학적 현장 연구를 했는데, 그 연구의 결과가 이 책의 본문을 이루고 있다. 뒤에 그는 이 연구를 확장해 일종의 ‘일반이론’을 세워 앞에 배치함으로써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이 주목을 요하는 것은 기존의 사회학적 관심이 포착하지 못했던 지점을 찾아냄으로써 ‘갈등이론’의 영역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미시사회학적 연구 대상이었던 영국의 ‘윈스턴 파르바’는 인구 천 명이 채 안 되는 노동자 주거지역이었다. 그런데 이 조그만 소읍이 두 개의 구역으로 완전히 나뉘어 한쪽 구역 주민들이 다른 쪽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고 따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국적도 같고 인종도 같고, 직업·소득·지위·계급도 다르지 않은데, 요컨대 아무런 차별의 표지도 지니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한 쪽은 ‘기득권 집단’을 형성하고 다른 한 쪽은 ‘아웃사이더 집단’을 형성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 ‘거주기간의 차이’였다. 기득권 집단은 2~3세대 전부터 거주해온 반면에, 아웃사이더 집단은 근래에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지은이는 여기서 차별이 발생하고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찾아낸다. 기존 거주자들은 신입 거주자들을 일종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낯선 것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두려움을 자극했는데, 그 두려움이란 자신들의 생활양식과 행위규범을 침범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기존 거주자들은 신입 거주자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외면함으로써 이 위협에 대응한다. 이때 낙인찍기와 모욕주기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된다. 교회와 클럽 같은 지역사회의 기구들을 기존 거주자가 장악하고 신입자들은 철저히 따돌린다. 권력을 쥔 쪽은 이제 자신들의 생활양식과 행위규범을 표준으로 설정하고 그 표준과 다른 아웃사이더들을 불결하고 열등하고 무질서한 종류로 낙인찍는다. 이렇게 하여 기득권 집단과 아웃사이더 집단이라는 별개의 두 구역이 성립한다.

지은이는 이런 차별이 제도로 성립하려면 기득권 집단 내부의 응집력이 강고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득권자들의 응집력은 기존의 느슨한 유대감에서 비롯하는데, 이 유대감이 신입자들을 만나 응집력으로 발전한다. 만약 기득권 집단 내부의 한두 사람이 신입자 따돌림 전략을 거스를 경우 이를 응징하여 기득권집단 안의 지위를 빼앗음으로써 응집력을 유지한다. 기득권 질서를 수용할 경우 높은 집단에 속한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이 대가로 돌아온다. 권력은 그대로 인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권력을 쥔 쪽은 자신들의 인간성이 우월하다는 자기확신을 향유함과 동시에, 권력에서 제외된 쪽을 인간성이 저열한 자들로 만들어버린다. 응집력이 약한 아웃사이더들이 이런 사회적 편견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으로써 그것을 내면화하면, 이 기득권자-아웃사이더 관계는 제도로서 완성된다.

지은이는 카를 마르크스가 정식화한 갈등이론, 곧 경제적 토대에 근거한 계급관계가 포착하지 못한 정서적·심리적 권력관계를 이 기득권자-아웃사이더 관계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이론을 확장하면 흑백차별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 차별을 설명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인종차별의 지표인 ‘인종’은 차별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인종 자체가 열등하다느니 하는 주장은 다른 이유로 이미 성립된 사회적 차별을 합리화하는 일종의 변명인 셈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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