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짬] ‘문학진흥법’ 제정 앞장선 도종환 의원
주무부서 예산 지원 등 난색 ‘진통’
세종시 오르내리며 사무관과도 ‘협의’
지난해 마지막날 국회 본회의 ‘통과’ 대변인 맡고 ‘4·13’ 지역구 출마도 결심
“권력 아닌 고통의 한복판에 있고자” “문학진흥법 통과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우선 주무 부서인 문체부로서는 그간 없었던 일을 새로 해야 하니까 가능하다면 회피하고 싶어 했던 것 같고, 예산과 인력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죠. 문학진흥이 낭비나 소모가 아니라 투자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한류를 개척해온 텔레비전 드라마의 대본을 쓰는 게 문인 아닙니까. 문화예술의 기초 중 기초인 문학을 튼튼히 해야 한류의 미래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게 주효한 것 같아요.”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도 의원은 세종시에 직접 내려가 기재부 과장까지 만나서 설득 작업을 펼쳤다. 자신의 시집에 서명을 해 ‘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문학진흥법은 크게 문학진흥기본계획 수립과 문학진흥정책위원회 구성, 국립문학관 건립을 축으로 삼는다. 법에 따라, 문체부는 5년마다 문학진흥기본계획을 세우고 해마다 세부 시행계획도 수립·시행해야 한다. 문체부는 또 장관 직속 문학진흥정책위원회를 두어 문학 진흥을 위한 기본 계획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우선은 문학진흥기본계획을 잘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행사 위주나 현시성 사업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내실 있는 문학진흥이 되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문인들이 기본계획 수립과 정책위원회 구성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초기 단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문체부 장·차관은 물론 국장·과장·사무관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서 상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문학 진흥을 위해서는 출판 진흥과 도서관 활성화도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 도서관을 지금보다 1천개 내지 1500개 정도 늘리는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책이라면 공공 도서관에서 초판 3천부 정도는 소화해 주는 사회 환경이 마련될 때 출판과 문학이 더불어 살아날 수 있어요.” 도 의원은 “지난해 한국 문학이 표절 사태 등으로 침체와 절망의 한 해를 보냈다”며 “문학진흥법이 문학에 대한 독자의 신뢰 회복과 문학 자체의 체질 개선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도 대학에 문예창작과가 있어서 해마다 새로운 문인들이 나오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이나 문예지 신인상 수상에만 매달리는 문창과식 방식으로는 정말로 큰 작가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어요. 지금 고교 백일장을 휩쓰는 아이들이나 대학 문창과 유망주들을 보면 기교는 뛰어난데 독서량이 부족해 보입니다. 문학진흥법에 따라 문학 창작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 세워지면 학교의 틀에 갇히지 않고 수십 년을 내다보는 깊이 있는 교육이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입안 과정에서 이름이 바뀐 국립한국문학관은 2018년까지 480여억원 예산을 들여 지어 2019년 개관을 목표로 삼는다. 벌써부터 몇몇 지자체가 터를 제시하면서 문학관 유치를 위한 물밑 경쟁을 펼치고 있다. 문학관 입지와 관련해 도 의원은 “지역 정체성과 문학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문학관 이외에 문인과 문학 진흥에 도움이 될 부대 사업 등 계획이 있는지, 학생들의 체험학습과 답사에 용이하도록 접근성이 뛰어난지, 갈수록 늘어날 유품과 유물을 추가 보관·전시할 수 있도록 공간 확장성을 갖추고 있는지 등을 판단해서 터를 결정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편 도 의원은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대책위 공동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시인의 눈으로 정치 현실을 보면서 내 언어로 브리핑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그는 오는 4월 총선 때 지역구에 출마하기로 결심을 굳힌 상태다. “우리 당에서 최근 의원 10여명이 탈당하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실망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을 하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난파 위기인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마음으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구고자 하는 생각에서 지역구 출마를 결심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내년 3월로 예정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하는 일 그리고 국립문학관 건립과 문학진흥기본계획 수립을 지켜보고 감시하는 일 때문에도 출마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바쁜 의정 활동 중에도 에세이 <너 없이 어찌 내게 향이 있으랴>와 <오장환 시 깊이 읽기> 두 권의 책을 내고 250여편의 시를 써서 오는 5월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에 도전하는 4월 총선과 그 이후 정치인으로서 행보는 ‘시인 도종환’에게는 또 다른 시험이 될 것이다. “사실 저도 걱정이 됩니다. 문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영혼이 있는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어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오라 운명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내가 왜 국회에 와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권력의 한복판이 아니라 고통의 한복판에 있으라’는 호명과 소명이 제가 생각하는 정치입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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