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석 지음/연암서가·3만5000원 지금 사람들은 어쩌다 끄적끄적 짧은 글을 적기도 하지만, 주로는 키보드를 치거나 손가락으로 눌러 글씨를 화면에 ‘구현’한다. 옛 사람들은 먹물 묻힌 붓(毛筆)을 손으로 놀려 종이에 ‘썼다.’ 이 쓰는 행위는, 대상이 종이에서 돌이나 상아, 금속 따위로 바뀌면 ‘써서 새기는’ 작업으로 변모한다. 역사적으로는 써서 새긴 것이 먼저다. 고인류의 벽화는 손이나 사냥한 동물을 바위에 새겨넣은 것들이다. 최재석 작가는 <철필천추>에서 철필로 글을 새겨넣은 다양한 전각과 벼루를 보여주며, 이 새기는 작업이 실은 서예의 연장이며, 인간 본연의 원초적 행위라고 말한다. “서예가는 전각가가 될 필요가 없지만, 전각가는 반드시 서예가이어야 한다.” 사방 한 치의 돌, 각양 각색의 벼루에 글을 써서 새기는 일은 “칼과 돌의 치열한 겨룸으로 만들어지는 조화로운 화합”이다. 그것은 디지털 문명 앞에서 점차 잊혀져 가는 손, 생각과 연결된 “손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고, 결국 “손의 복원은 자기 존재의 복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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