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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국보 ‘가야금관’ 왜 리움에 있을까

등록 2016-01-28 20:30수정 2016-01-29 10:35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나름의 안목과 식견으로 고미술품을 사 모았다. 살아생전 그가 각별히 애착을 보였던 ‘국보’ 가야금관(제138호)과 청자진사주전자(제133호)는 호암미술관과 리움으로 이어지는 삼성가의 컬렉션에서도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재청 누리집 갈무리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나름의 안목과 식견으로 고미술품을 사 모았다. 살아생전 그가 각별히 애착을 보였던 ‘국보’ 가야금관(제138호)과 청자진사주전자(제133호)는 호암미술관과 리움으로 이어지는 삼성가의 컬렉션에서도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재청 누리집 갈무리
이병철-이건희 부자 대이어
‘국보급’ 문화재 사모은 뒷얘기
대표작 20점 사진 곁들여 해설
리 컬렉션
이종선 지음/김영사·1만8000원

‘이병철’이란 이름에서 연상되는 돈, 갑부, 재벌, 삼성그룹 창업주라는 이미지는 기실 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물론 대한민국 최고 부자이면서 재벌의 대명사였지만, 문화재·골동품 시장에선 소문난 수집광이기도 했다. 이병철이 없었다면 삼성이 없었을 테고, 당연히 호암미술관도 삼성미술관 리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 컬렉션>은 탐나는 골동품을 하나둘 사 모으는 호사 취미로 시작해 가장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한 사설 박물관의 설립자가 되기까지, 이병철 삼성 회장이 무엇을 어떻게 수집했는지 소개하는 ‘내부자’의 기록이다. 부전자전의 ‘수집벽’으로 아버지가 시작한 ‘국보 컬렉션’을 7배 이상 키우고 늘린 이건희 회장의 행적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이병철 컬렉션’이 아니라 ‘리 컬렉션’이다.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스승인 김원룡 박사의 ‘지시’로 1976년부터 “20여년 삼성 부자의 갈망을 보필하는 그림자가 되어” 그들의 컬렉션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기간의 경험을 담은 관찰기이자 후일담이다. “이병철로부터 이건희까지 수집과 박물관에 관련된 상세한 에피소드와 내막 (…) 바로 그 명품들이 간직하고 있는 풍파와 숨겨진 이야기를 이곳에 담아내고 싶었다.”

골프와 함께 ‘유이한’ 취미가 미술품 수집이었던 아버지 이 회장은 여러 점 국보 중에서도 가야금관(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제138호)과 청자진사주전자(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제133호)를 끔찍이 아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가야금관의 소재부터 챙겼다. 가끔 금관을 꺼내어 부속 유물들을 부착해 보는 망중한도 즐겼다. 청자주전자의 안위를 걱정한 그는 82년 호암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30㎜ 방탄유리로 전용 쇼케이스를 따로 만들도록 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진품은 따로 보관하고 복제품을 대신 전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청자를 좋아한 아버지 이 회장과 달리 백자를 선호한 아들은 홍기대 같은 전문 수집가에게 수업을 청해 식견을 길렀다. 아버지는 “비싸다고 판단되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구입하지 않는” 원칙을 지켰지만, 아들은 돈에 구애받지 않았다. 전문가의 확인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사들였다. 리움의 그 많은 소장품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백자달항아리(국보 제309호)는 지은이가 이 회장의 출근길에 결재를 받아 구입한 것이다. 당시 아파트 여러 채 값을 치렀지만, 이 회장은 구체적인 비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렇게 수집한 작품들을 아버지는 호암미술관에, 아들은 리움에 각각 전시해 일반 공개했다. 이들 부자가 대를 이어 사들인 국보는 모두 37건, 그보다 아래인 보물까지를 합치면 152건에 이른다. 간송미술관이 23건(국보 12건·보물 11건), 호림박물관이 54건(국보 8건·보물 46건)인 데 견주면, 삼성가가 소장하고 있는 국보급 문화재는 질과 양 모두에서 압도적이다. 지은이는 이 가운데 정선의 <인왕제색도>, 고구려반가상(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 대표적인 국보 20점을 골라 개략적인 생김새와 고고학적 가치, 구입 또는 입수 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유능한 수집가가 되려면 재력이 필수지만 갑부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수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갈망과 행동력” 즉 안목과 집념이 겸비될 때에만 비로소 명실상부한 수집가가 될 수 있다, 이병철-이건희 부자는 이 삼박자를 두루 갖춘 인물들이었다고 지은이는 평가한다.

그러나 주요 국보를 손에 넣은 ‘상세한 내막’이나 ‘숨겨진 이야기’는 예상보다 많지 않다. 가야금관도 달항아리도 어느 날 갑자기 삼성의 수중에 들어와 있다. 대개 장물로 시작해 ‘어둠의 경로’로 유통되다 마지막에야 햇볕을 쬐는 골동품의 특성상 진솔한 서술은 힘들었을 수 있다. 덧붙여, “삼성의 검수와 동의를 받아” 책을 냈다는 지은이의 고백은 기록의 한계를 짐작게 한다. 엄청난 가격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던 로이 릭턴스타인(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뒷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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