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세상-나는 음식에서 삶을 배웠다
켈시 티머먼 지음, 문희경 옮김/부키·1만6500원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마이클 캐롤런 지음, 배현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밥이 하늘이다. 밥상 위에 우주가 있다.’
현인들은 이렇게 가르쳐왔지만 인류는 외면하고 다른 길로 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밥상 위에는 한숨과 절망이 빠짐없이 오른다.
‘음식 현실’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담은 두권의 책이 나왔다. <식탁 위의 세상>(켈시 티머먼),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마이클 캐롤런)은 식품 체계의 왜곡과 식량 문제를 냉철하게 고발하는 종합 보고서다.
먼저 편하게 손에 잡히는 책은 <식탁 위의 세상>이다. “우리 집 냉장고는 칼로리의 유엔”이라며 지은이는 발랄하게 원산지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영화에 견주면 ‘스펙터클 어드벤처 음식 로드 무비’ 같다고 할까. 생산자들을 찾아다니는 길목마다 위험과 모험이 도사린다. 그곳 농장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 자체가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식탁 위의 세상> 지은이 켈시 티머먼은 “우리는 결코 아동노동으로 생산된 초콜릿을 원하지 않지만 대체로 값싼 초콜릿을 원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콜롬비아의 커피나무에 매달린 티머먼. 부키 제공
켈시 티머먼은 호기심 많은 여행가 겸 저널리스트로, 2007년 자신의 옷 라벨을 보고 ‘내 옷은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에 온두라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의 옷공장 노동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리고 쓴 책이 훗날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어디에서 입는가?>(Where Am I Wearing?)였다. (한국어판 제목은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
후속작인 이번 책의 원제는 <나는 어디에서 먹는가?>(Where Am I Eating?)이다. 아침 식사로 스타벅스 콜롬비아 로스트를 즐겨 마시던 그는 콜롬비아 현지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사람에게 ‘영업 비밀’을 듣고 배신감을 느낀다. “나라마다 독특한 입맛에 맞추려면 커피를 섞어야 돼요. 100% 콜롬비아 커피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콜롬비아에서는 단맛 나는 아라비카만 재배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커피를 수입해 혼합한다는 얘기였다.
지은이는 다국적 식품 대기업들이 농부들과의 관계를 과장하고 그 이미지를 홍보에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스타벅스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마케팅 홍보문구를 통해 자신들이 커피 농가의 삶과 농사 개선 사업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작 해당 지역 농민들은 그 혜택이 없거나 미미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스타벅스 농민 지원 사업 표시가 붙은 집의 할머니는 말한다. “스타벅스는 들어본 적도 없어.”
허쉬 초콜릿의 창업자는 “남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며 인류애를 강조했지만 지은이는 허쉬의 ‘초콜릿 월드’를 방문한 뒤 냉소적으로 말한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지-잠시나마-아이보리코스트의 카카오 농장에서 만난 노예를 잊을 뻔했다.”
식품회사 돌은 뉴질랜드에서 ‘윤리적 선택’ 브랜드의 상표 등록을 추진하며 모든 노동자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고 공정한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코스타리카 바나나 농장에서 만난 청년은 시간당 2달러(2200원) 정도를 받으며 독사 같은 뱀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유해한 화학약품을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미국인 1명은 케냐인 32명의 몫을 먹고, 미국 식품의 절반가량은 쓰레기로 버려진다. 저개발국 농민들은 먹을 것을 기르면서도 먹고 살지 못한다. 미국 소매가격 10달러(1만1200원)인 커피 한 봉지를, 농부들은 1달러(1130원)도 못 받고 판다. 아이보리코스트의 카카오 농장 농부들은 1년에 약 300달러(33만8000원)를 번다. 그것도 10~12명 한 가구 전체 수입이다.
‘바나나 공화국’이라 불리는 일부 나라들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운영하는 형국이다. ‘바나나 대학살’로 불리는 1928년 콜롬비아 노동자 파업 당시 군대는 광장에 기관총을 배치하고 5분 경고 뒤 남자, 여자, 아이들에게 발포했다. ‘바나나’는 피에 물들었다. 선진국은 세계은행과 아이엠에프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식품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자국 시장을 보호했다.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은 음식을 둘러싸고 왜 이런 불평등과 모순이 발생하는지를 열정적으로 파고든다. 이 책은 2003년 멕시코 캉쿤에서 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 농민 이경해의 이야기를 앞부분에 보여준다. 그가 죽음으로 저항했듯, 돈과 재화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신자유주의 시대, 이 치열한 ‘식량 전쟁’에서 각국 소농들은 설 곳이 없다. 지은이는 원인을 ‘저가 식품’ 구조에 있다고 보고 식품의 가격 적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가 식품이 가진 ‘음식의 정치성’을 촘촘하게 논증해 들어간다.
지난 세기 식품 가격은 고르게 하향 평준화하지 않았다. 설탕 페이스트리 한 상자 가격은 피망 두개 값과 같다. 건강한 식품은 비싸졌고 정크푸드에 가까울수록 싸졌다. ‘영양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은 음식을 단지 열량으로 환원했다. 음식에 담긴 문화·지리·생태적 맥락은 모조리 삭제되었다. 다채로운 입맛이 사라지면서 음식 조리 지식도 함께 소멸해가고 있다. 맛을 잃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잃는 것이다.
두 책의 지은이들은 식품 시장이 불평등하게 구조화돼 있음을 밝힌다. 미국에는 3억명 이상의 소비자와 220만명의 농부가 있다. 모래시계처럼, 가운데를 차지하는 기업은 극히 일부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에도 거대 식품업체 3곳의 순이익은 55~189%까지 증가했다.(<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 다국적 기업은 세계 식품 무역의 40%를 장악하고 20개 기업이 세계 커피 무역을 독점한다. 세계 10개 기업이 농약 판매의 90%를 차지하고, 상위 6대 종자 회사는 세계 판매량의 98%를 점유했다. 식량 안보는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식탁 위의 세상>)
이종 교배, 합성 농약, 화학 비료를 쓰는 현대적 농업기술로 개발도상국은 작물 수확량을 늘려왔다. 이를 ‘녹색 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저가 식품으로 널리 인류를 먹여 살리려 했던 기획은 소수의 배만 불리며 실패했다. 2009년, 농약과 종자를 사려고 빚을 진 인도 농부들은 30분마다 한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식탁…>) 넓은 토지에 단작(단일 재배)이 이뤄져 민속 농경 지식을 잃게 되었다. 오늘날 음식의 핵심은 균일성이다. 특정한 저가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의 ‘강제적 사회화’ 탓에 나머지 품종의 식품과 음식은 식탁에서,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런 평탄하고 지정학적 단작 공간에서는 자본만이 ‘자유’를 누리며 민주주의가 희생된다. 대량 사육된 육우의 ‘마블링’은 곡물을 대량 먹인 값이다. 저가 육류는 곧 닥칠 심각한 식량 부족을 예고한다.(<값싼…>)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1967년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가 모든 현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는 기본적인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상에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식탁 위의 세상’을 찾아다닌 티머먼에게 콜롬비아의 아루아코 원주민들은 말했다. “우리는 대지의 어머니에게 바쳐질 제물입니다. 땅에 해를 끼치면 전부 되돌아온다고 믿습니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치열한 ‘음식 정치’에 적극 개입해야 할 때라고 지은이들은 힘주어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손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