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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의 삶을 손에 쥘 때

등록 2016-02-04 20:38

잠깐독서
김남주 평전
김삼웅 지음/꽃자리·1만8000원

평전이되 평전이 아니다. 차라리 시집이다. <김남주 평전>에 담긴 100편의 시만이 아니다. 그의 삶은 김남주 시인 스스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비인간성, 부패와 타락에 대한 전면전에 시인 자신이 몸소 참가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 자체로 저항시다. 김남주 시인이 꾹꾹 눌러쓰던 ‘해방’이라는 단어, 목청껏 외친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구, 김남주를 수식하는 ‘혁명가’라는 칭호는 지금의 언어로는 버겁다. 그래도 평전을 집었다면, 결정해야 한다. 김남주의 삶을 과거로 한 수 접으며 즐길 것인가, 현실로 끌어안고 번민할 것인가.

전남 해남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나는/ 농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시인과 농부)라고 말했던 김남주 시인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몇달째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을 보며 어떤 시를 쓸까. 반유신항쟁의 첫 지하신문 <함성>지에 독재자를 향해 ‘제死공화국’을 선언했던 스물여덟의 청년, ‘학살의 원흉이 지금/ 옥좌에 앉아 있다/ (…) 판사라는 이름의 작자들은/ 학살의 만행을 정당화시키는 꼭두각시가 되어/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라고 쓴 시인은, 그 독재자의 딸이 청와대에 앉아 있고, 학살의 원흉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청년들은 군 위안부 소녀상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하는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를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모순, 자본주의 상호간의 모순, 노동과 자본 사이의 모순”을 이유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서 혁명을 꿈꿨던 시인은 포기조차 포기한 N포세대를 보며 무슨 말을 건넬까.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혁명동지이자 아내인 박광숙은 평전에서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추석무렵)는 시구를 들며 “그는 이렇게 살고 싶어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살아 있다면,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다시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지금은 지옥, 헬조선인데.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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