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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물과 인간, 사랑과 착취의 잔혹사

등록 2016-02-18 19:59

1820년 무렵의 동판화. 전시장 안 비좁은 우리에 여러 야생동물이 갇혀 있다. 당시 동물들은 인류의 동반자가 아닌 전리품이었다. 반니 제공
1820년 무렵의 동판화. 전시장 안 비좁은 우리에 여러 야생동물이 갇혀 있다. 당시 동물들은 인류의 동반자가 아닌 전리품이었다. 반니 제공
인간과 함께한 여덟 동물들
문화 교류와 제국 건설 ‘동지’
인간-동물 관계 복원 첫걸음
위대한 공존
- 숭배에서 학살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덟 동물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
반니·1만8000원

인류사에서 배제되었으나 큰 영향을 끼친 동물 이야기를 교양 있게 펼치는 역사서다. 지은이는 1936년 영국 태생의 선사학 전문가 브라이언 페니건. <인류의 대항해>(2014)라는 책으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최근 새로 출간된 그의 책 <위대한 공존>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움직인 여덟 동물(개, 염소와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에 대해 다룬다.

동물 애호가인 가족들 덕에 여러 동물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토끼 남편’이라는 지역 토끼 동호회 활동까지 한다고 털어놓은 지은이는 사실 고고학 대중화에 앞장서온 명망 있는 노학자다.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고고학, 인류학을 비롯해 분자생물학, 동물행동학 등을 총동원해가며 평생 수집한 연구 결과를 이 책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각종 문헌자료와 유적의 흔적을 뒤져 인류가 어떻게 동물을 숭배하고 먹어치웠으며 착취하고 학대했는지 낱낱이 파헤친 것이다.

먼 옛날, 서로 먹고 먹히던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바뀌었다. 인간은 동물을 사냥하면서도 대자연과 강한 유대감을 갖길 욕망했고, 숭배했다. 알래스카 코유콘 족 사냥꾼은 말했다. “제대로 된 인류의 역할은 우월한 자연을 섬기는 것이다.” 아프리카 부족인 산 족의 주술 전통 속에는 동물과 사람이 하나라는 관념이 지금도 녹아 있다. “동물과 인간은 같은 세상에 살면서, 몸이나 마음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얽혀 있었다.”

동물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도 없었다. 적어도 1만5000년 전 인간과 늑대 사이에는 은은한 동료애가 형성됐다. 늑대의 후손인 개는 인류의 첫 ‘동물 가족’이었다. “동물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 당나귀는 사실 8000년 이상 인간 곁에서 일을 해온 “숨은 영웅”이자 도시와 문명을 연결한 “픽업트럭”이었다. 국제적 대규모 대상 교역에 나선 당나귀나 낙타가 아니었다면 사상 전파, 문화 접변이 불가능했다. 염소와 양은 재산과 혼수품이 되어 인간의 친족 형성에 이바지했고, 말은 기마병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제국을 건설했다. 이렇듯 인간과 동물은 서로의 시공간, 삶과 경험에 깊숙이 개입해왔던 것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동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가정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영향이 컸다고 지은이는 분석했다. 9500년 전 가축으로 길들여진 고양이는 쥐를 잡으며 인간과 공생했지만 1232년에 이르러 교황에 의해 “사악한 피조물”로 낙인찍혔다. 고양이는 마녀와 얽혔고, 이단의 하수인이라는 비난 속에 돌팔매질당했으며 성인 축일에는 기둥에 꽂혀 죽었다. 성 누가 축일에 개는 채찍으로 맞았다. 농장 노동자나 도시 빈민 또한 박차와 채찍으로 통제되었다. 인간 역시 위계화되어 동물처럼 학대받았던 탓이다.

더욱이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동물을 기계라고 선언한 뒤 인간과 동물의 오랜 동반자적 관계가 산산조각났다. 기독교와 근대 철학이 동물을 지배할 권리와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동물을 수치와 고깃덩어리로 간주했다. 기병대의 전성기인 19세기, 말들은 나폴레옹전쟁, 인디언전쟁, 크림전쟁을 치르며 잔혹하게 죽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대형동물 사냥은 대학살 그 자체였다. 이국의 동물들은 만찬 접시에 오르거나 동물원에 전시되었다. 동물은 식민지에서 약탈한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동물 세계에도 위계가 있어 조랑말은 죽을 때까지 석탄을 져날랐지만, 19세기 중반 빅토리아시대 중산층 애완동물은 하녀보다 상전이었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선별적이었다.

이 책은 동물을 도구화하지 않지만,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처럼 윤리학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기에 생각이 전달되지 않았던 동물들의 역사와 고난을 대변하며 인간의 책임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 동물권 논의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현재 대부분의 동물들은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먹힌다. 그리고 한때 동등한 동반자의 위치에서 지구 역사를 변화시켰던 여덟 종류의 동물은 그들의 요구가 아닌 우리의 요구대로 다뤄지고 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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