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김헌 지음/이와우·1만5000원 헬레네가 사람인지 여신인지, 제우스가 그리스 신인지 로마 신인지 헛갈리기만 한다. 읽어도 잘 기억 안 나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 예술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기에 안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고전’이다. 호메로스뿐인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예수가 남긴 글과 이야기는 서양 문학과 서사의 마르지 않는 원천인 고전으로 추앙받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고,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서울대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강의하는 지은이는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로 고전을 쉽고 재밌게 해석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그리스의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풍요로운 땅 트로이를 침략한 “해적의 왕초”에 불과하며 그들이 벌인 전쟁은 “진화된 형태의 해적 활동” 아니었을까? 영원한 영웅을 노래하는 시인은 영웅이 회자될 때마다 함께 기억되므로, 그 역시 영원히 사는 자다. 말하자면 ‘영생불멸의 욕망’이 영웅과 시인을 낳는다. 인간이 본질의 세계인 이데아를 꿈꾸는 것도,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다. 철학은 “몸의 간섭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성으로 이데아를 열망하”는 것이므로 “몸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죽음”과 닮았다. 죽음이란 결국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에 올라가는 것”이므로 이데아엔 불멸의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더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의 지혜는 ‘꼭 알아야만 하는가. 앎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맞닿는다.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를 범한 오이디푸스가 파멸한 건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지혜를 미리 가졌다고 해서 그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지은이는 “고전의 생명력은 특정 시대의 문제에 깃든 보편성을 통찰하는 힘에서 비롯되며, 역사의 매 순간에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에 대응하는 힘에서 확인된다”고 강조한다. 또 고전은 “시련과 실패, 혼란과 갈등, 모함과 질투, 증오와 분노에 휩싸이는 순간순간마다 살아갈 힘을 주고 삶의 방식에 의미를 밝혀준다”고 말한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김헌 지음/이와우·1만5000원 헬레네가 사람인지 여신인지, 제우스가 그리스 신인지 로마 신인지 헛갈리기만 한다. 읽어도 잘 기억 안 나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 예술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기에 안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고전’이다. 호메로스뿐인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예수가 남긴 글과 이야기는 서양 문학과 서사의 마르지 않는 원천인 고전으로 추앙받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고,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서울대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강의하는 지은이는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로 고전을 쉽고 재밌게 해석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그리스의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풍요로운 땅 트로이를 침략한 “해적의 왕초”에 불과하며 그들이 벌인 전쟁은 “진화된 형태의 해적 활동” 아니었을까? 영원한 영웅을 노래하는 시인은 영웅이 회자될 때마다 함께 기억되므로, 그 역시 영원히 사는 자다. 말하자면 ‘영생불멸의 욕망’이 영웅과 시인을 낳는다. 인간이 본질의 세계인 이데아를 꿈꾸는 것도,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다. 철학은 “몸의 간섭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성으로 이데아를 열망하”는 것이므로 “몸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죽음”과 닮았다. 죽음이란 결국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에 올라가는 것”이므로 이데아엔 불멸의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더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의 지혜는 ‘꼭 알아야만 하는가. 앎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맞닿는다.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를 범한 오이디푸스가 파멸한 건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지혜를 미리 가졌다고 해서 그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지은이는 “고전의 생명력은 특정 시대의 문제에 깃든 보편성을 통찰하는 힘에서 비롯되며, 역사의 매 순간에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에 대응하는 힘에서 확인된다”고 강조한다. 또 고전은 “시련과 실패, 혼란과 갈등, 모함과 질투, 증오와 분노에 휩싸이는 순간순간마다 살아갈 힘을 주고 삶의 방식에 의미를 밝혀준다”고 말한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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